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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 작은 친절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7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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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88. 작은 친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였으나 양복을 입고 간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습니다. 주일 오후. 동네 젊은 사람들이 모여 축구를 했습니다. 얼마 전에 동네에 조기 축구회가 만들어졌고 다음 주말에 이웃 마을과 시합을 하기로 한지라 연습을 위해 모인 것이었습니다. 

양편으로 나눠 공을 찬 것이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찼는데, 운동을 모두 마쳤을 때 축구 회원 중의 한 사람이 자기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청했습니다. 칼국수를 밀어 놓으라고 아내에게 부탁을 하고 왔다는 얘기였습니다. 

처음 있는 그런 초대에 빠지기가 아쉬워 얼른 집으로 가 양복으로 갈아입고 뒤따라갔습니다. 내깐엔 시간을 아껴 보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얼른 다녀와 드릴 예배가 있었던 것이지요. 

도착해 보니 방안엔 연기로 가득했습니다. 좁은 방안에 운동을 같이한 마을 사람들이 비좁게 앉아 고기를 굽고 있었습니다. 다들 떠난 농촌에 그래도 남아 무모함을 이기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 삶의 무게를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함께 운동을 하고 함께 밥상에 둘러앉은 모습은 그 자체가 더없이 정겹고 고마운 모습이었습니다. 

 

같이 어깨를 맞대고 앉아 고기를 먹는데, 그만 생각지도 많은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상추에 고기를 싸고 고추장을 잔뜩 발라 막 입에 넣으려는 순간, 상추에서 삐져나온 고추장이 양복 깃에 떨어지고 만 것이었습니다. 시뻘건 고추장이 제법 떨어져 버렸습니다. 얼른 휴지와 행주로 닦아 보았지만 얼룩이 더 넓게 번질 뿐이었습니다. 연한 색의 양복이었던지라 자국은 대번 눈에 띄게 남고 말았습니다. 잠깐의 실수로 양복 것에 얼룩이 졌으니 마음이 컸습니다. 참으로 속상한 일이었습니다. 얼룩 때문에 양복을 못 입는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며칠 뒤, 시내를 나가는 김에 양복을 가지고 나가 세탁소를 찾았습니다. 세탁소에는 젊은 두 부부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하자 주인은 양복을 받아 들고 얼룩을 살폈습니다. 그러더니 “이거, 그냥 물로 닦아 내면 돼요.” 하면서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 뒤 솔로 정성스럽게 얼룩을 닦아 내는 것이었습니다. 서너번 정성스럽게 얼룩을 닦아내자 정말 얼룩은 깨끗하게 지워졌습니다. 

주인은 이내 깨끗해진 양복을 건네주었습니다. 얼룩 때문에 양복을 못 입는 것 아닌가 걱정이 컸던 나는 기쁜 마음으로 양복을 받아들여 얼마를 드리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주인의 대답이 혼쾌했습니다.

“얼마는요. 그냥 가세요. 따로 든 것도 없잖아요?”

못된 생각이지만 그럴경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곤란하지만 해보긴 해볼 테니 맡기고 가세요”해 놓고선 며칠 후 찾으러 오면 “힘들 었지만 잘 됐어요.” 하며 세탁비를 받을 수도 있었던 일 아니었을까요. 

작은 세탁소 주인의 정직한 친절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그건 단지 돈 몇푼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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