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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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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898. 광철씨네 김장
세월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겨울철, 그래도 김치는 반양식이 됩니다. 특별한 찬이 없어도 김치 한가지면 끼니에 아쉬움 없고, 화롯불에 김치찌개라도 올리면 마실꾼들 둘러앉는 밥상엔 넉넉함이 뱁니다. 이 얘기 저 얘기 얘기꽃 피우며 나누는 상의 김치찌개는 한껏 구수함을 더해줍니다.
동네에서 돼지라도 잡아 고기 몇 점 더 들어가는 날은 그야말로 상이 푸짐해지기도 합니다. 시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게도 따로 없는 산골 마을, 김치는 한 겨울 내내 없어서는 안될 반양식이 됩니다.
해마다 김치 담그는 철이 오면 어려움을 겪는 집이 있습니다. 아랫작실 광철씨네입니다. 광철씨, 남철씨, 아버지 박종구씨, 누구하나 살림을 챙길만한 식구들이 없습니다. 광철씨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그런 격정은 없었는데 몇년 전 어이없이 세상을 뜬 뒤론 엄두를 못낼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음담말 허름할대로 허름한 흙벽돌 집, 한때 먹고 겨울잠을 자는 게 아닌 이상 광철씨네로선 겨울을 나야 할 김장 담그는 일이 여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광철씨 어머니 세상 떠나고 이번이 네번째 겨울, 그래도 그 네 번의 겨울동안 광철씨네의 김장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식구들이 담근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돌봐줄 친척들이 있어 그들의 손길을 빈 것도 아닙니다.
윗작실 죽마골의 꽃댕이 할머니, 꽃댕이 할머니의 남다른 손길이 해마다 광철씨네의 겨울 반양식을 마련해 왔습니다. 여든이 넘어 혼자 사시면서도 할머니는 해마다 광철씨네의 김장을 담켰습니다. 친척도 아니고 특별한 정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다만 안쓰러움 하나로 가을철이 되면 이런 저런 김장거리들을 모아 김장을 담궈 온 것입니다.
팔십이 넘은 노인네가 우물에서 물 긷느라 두레박질 하는 걸 보고 아주머니 몇분이 도왔고, 올해에는 아예 날을 잡아 이필로 속장님, 김천복 할머니, 정학 할머니들이 모여 하루 김장을 담궜습니다.
밑 빠진 독 물 붓기라고 몇 있는 친척들도 더는 뒷전인 그 일을 해마다 해마다 몇분 할머니들이 주름진 손길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훌륭한 스승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겨울 내복이라도 사가지고 죽마골 꽃댕이 할머니 찾아 뵈려는 일을 더이상 미뤄서는 안될 듯 싶습니다.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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