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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광철씨의 노래와 기도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436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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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70. 광철씨의 노래와 기도


광철씨가 늦게야 내려왔다.
수요예배를 마치고 집사님 두 분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광철씨가 교회 마당으로 들어선 것이다. 꽃과 비닐봉지가 손에 들려 있었다. 꽃은 그 날 일한 집에서 얻어온 것이고, 비닐봉지 안에 있는 호박은 집에서 따왔단다. 늦었으니 어서 올라가라는 집사님의 말에 그래도 왔으니 기도나 하고 간다며 광철씨는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제단 불을 켜고 가져온 꽃을 꽂는 사이 광철씨는 마루 뒤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지막한 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더듬더듬 기도가 이어졌다.
“하나님, 일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농사철이 되어서 으트게 바쁜지 죄송합니다.

전도사님 사모님 건강하시고 소리도 건강하시고
저는 가진 게 없어 헌금도 못 내고 죄송합니다.
그래서 오늘 꽃 하구 호박 가져왔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세리의 기도.
죄송한 것 뿐인 사람, 광철씨가 묻는다.
“또 뭐라고 하면 되죠?”
“됐어요. 그냥 맘속에 있는 걸 말하면 되죠, 뭐.”
많은 얘길 했다. 불쌍하다고 여길 뿐 누구도 광철씨 마음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얘기 중 노래 얘기가 나왔다.
언젠가 노래해서 2등인가 상을 탄 적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한번 들었으면 좋겠다고 빈 인사를 하자, 광철씨는 지금 한번 해 보겠다 한다. 주먹을 쥐어 입가에 붙여 대며 “이걸 마이크라고 하죠.” 하며 노랠 시작했다. ‘내 고향’ 이라는 들어보지 못한 노래였다.
사택 현관 계단에 앉아 다시한번 청해 들으며 옮겨본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내 고향은 충청북도란다. 아버지는 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논 밭에 나가시고, 나와 내 동생은 논둑길로 다니면서 메뚜기를 잡으며 놀고 있어요.”
‘달맞이 가자’도 불렀고 ‘풍년가’도 불렀다.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금수강산 풍년이 왔네. 지화자 좋다. 얼씨구 좋다. 명년 사월에 관등놀이 가잔다.”
시조 읊듯 단조로운 음이었지만, 광철씨는 진지하게 불렀다. 머슴 살 때 배운 노래라 한다. 머슴으로 일할 때, 라디오 틀어놓고 혼자 배웠다는 것이다. 집사람이 내 온 수박을 먹으며 이런 저런 광철씨의 지난 내력을 들었다. 광철씨는 말벗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인사하고 돌아간 광철씨가 얼마 후 다시 내려왔다.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두 가지를 잊고 가서 다시 왔다는 것이다. 가다가 생각하니 사모님께 인사하는 것과, 수박 잘 먹었다 인사하는 걸 빼먹었다는 것이다.
다시 인사를 하고 오르는 작실 까지의 어두운 혼자의 밤길, 오랜만에 전도사 앞에서 불러본 어릴 적 그 노래를 다시 흥얼거리며 오를 광철씨의  모습이 어둠 속 선하다.
죄송한 것 뿐이라고 기도했지만, 죄송한 것 하나 없을, 바보 같이 깨끗한 사람. 서른 셋 노총각, 광철씨!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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