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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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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42. 이웃에 있는 스님
이웃에 있는 스님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건 우물 파는 분을 통해서였습니다. 안골에 집을 지으면서 우물을 파게 되었습니다. 부론에서 지하수 파는 일을 하는 분이 있어 부탁을 했지요. 코란도 짚차를 개조한 차에 장비를 장착한 기계가 안골로 들어와 며칠 동안 물 파는 일을 했습니다. 누구 조수를 따로 데려오지를 않아 천상 내가 조수 역할을 하게 되었지요.
며칠 물을 파며 자연스레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게 되었는데 우물 파는 분은 그중 스님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분이 절에 다니는 분이기도 했고, 목사인 내게 그래도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마음인 것도 같았습니다. 우물 파는 분께 들은 스님의 대강 얘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십여년 전에 스님 한 분이 들어왔습니다. 공부나 한다며 허름한 시골집에서 살기를 시작했지요. 꽃이 있으면 벌과 나비가 찾는 법, 얘길 듣고 스님을 찾는 신도들이 생기기 시작했지요. 스님은 다른 스님과는 다른 엉뚱한 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있지 말고 절을 짓자고 신도들이 말했을 때 반대한 사람이 스님이었지요. 이런 데서야 500원을 시주해도 되고 1000원을 시주해도 괜찮지만 그럴듯한 절을 지으면 1000원 시주하기가 부담스러워진다는 이유에서였죠.
뭘 먹고 사느냐 물으면 그저 나 하나 먹고사는데 뭐가 들게 있냐며, 허튼 걱정일랑 하덜덜 말라는 투입니다.
이웃에 ‘해뜨는 집’이라고, 개신교 목사가 정신지체아들과 함께 사는 집이 있는데 ‘해뜨는 집’의 가장 든든하고 고마운 후원자는 사실 스님입니다. 치약, 차솔, 휴지등 ‘해뜨는 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남모르게 전하고 있지요. 덕분에 사월초파일이 되면 스님 계신 그곳에 ‘해뜨는 집’에서 찾아가 축하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혼자 사는 스님 굶지나 말라고 조금씩 전하는 공양미가 그런대로 모이면 자주 들리는 신도 편에 쌀을 몇 자루에 나눠 가난한 집에 전하되 누가 전하드라 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말것! 부탁을 하지요. 누구라 말을 안 해도 그만한 법력이 어디서 나는지 중생들이라 아주 모르기야 허겠습니까.
당신껜 필요도 없을 경운기와 엔진톱을 사놓고 때 지나도록 논밭 못 가는 노인들 계시면 경운기 몰고 나가 논밭 갈아 드리고, 땔감 걱정하는 가난한 이 있으면 톱 들고 나가 나무를 해주고, 그렇게 살아가지요. 사람들이 미안해하면 스님은 그럴 뿐입니다.
“저야 늘 시간이 남는걸요. 뭐”
지난번 초파일을 앞두곤 스님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방생하러 가자는 신도들 청이야 가난한 자들 먼저 돌보라는 말로 물렸는데, 등 다는 일은 또 어쩔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져 다들 사는 게 엉망인데 이 형편에 등을 달아야 하나, 스님은 그런 걱정이었습니다. 그래도 대목(?)이라면 그때가 대 목인데(이 무례한 말을 함부로 씀을 용서하십시오. 사실은 내 얘기가 아니고 우물 파는 분 말 그대로입니다) 등 다는 일이 사실 무슨 허탄한 일이냐며 그것조차 그만두자, 스님은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멀지 않은 이웃에 좋은 이웃이 있는 걸 아직 모르고 지냈구나, 한번 뵈야지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결국 물이 안나와 그냥 돌아가는 우물 파는 분께 단강 얘기가 적힌 책을 스님께 전해 달라며 전했습니다.
책머리에 이렇게 썼지요.
‘이런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연 닿으면 인사드리겠습니다.’
며칠 뒤 우물 파는 분이 다시 단강을 들러 뭔가 책을 한 권 건넸습니다.
<달마보전> 스님이 전하는 책이었습니다.
언제 차분하게 책을 열어 선선한 향기 맡아 볼 참입니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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