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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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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45. 어떤 예배
좁은 속내를 쉽게 드러낸다고 흉할진 몰라도 지난 얘길 하나 하자. 지난번 원주에 있는 한 교회에서 주일저녁예배 설교를 한 적이있다. 시내에 있는 장로교회였다. 교파에 얽매이지 않고 불러준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마침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선교회의 회장이 얘기마을 가족이었는데, 담임목사님께 이야기를 하고 허락을 받았다 했다.
예배전 찬양하는 모습이 진실했고, 젊은이들의 모습이 많이 뵈는것도 인상적이었다.
설교시간, 늘 그랬던 대로 나직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했다. 예배를 마치고 친교실에 모여 다과를 나누는데 함께 참석한 교우들이 한마디씩 설교에 대한 인사를 했다.
‘은혜로웠다’ ‘좋았다’는 의례적인 인사도 있었고, ‘재미 있었다.’는 묘한(?) 인사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그러려니 한다. 설교에 대한 평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여긴다.
‘좋았다’고 해서 으쓱한다든지, 시큰둥하다고 해서 실망한다든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설교란 내 말 재주를 평가받는 시간이 아니지않는가. 그분의 말씀을 선포할 뿐, 나는 도구로 물러서야 하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며칠 후에 여선교 회장인 집사님이 청년 몇 명과 함께 단강에 들리셨다. ‘얘기마을’을 발송해 주기 위해서였다.
집사님은 지난번 예배에대해 고마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너무 좋아하면서, 그런 분이 왜 여적 시골에 계시냐구, 왜 도시로 안 나오구 구석진 시골에 있는 거냐구 죄 그러는 거예요.”
그게 고마운 인사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 말 듣기엔 내 삶이 턱없이 함량 미달임을 잘 알면서도 고맙게 들린 것이 사실이다.
저 이쁘다는 소릴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맞지싶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그 인사가 묘했다. 그 말속엔 잘난 사람은 모두 도시로 가고 못난 사람만 농촌에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한 듯 담겨 있는게 아닌가.
가뜩이나 농촌의 현실이 그런데 목회자까지도 잘난 목회자는 도시로 나가 성공적인(?) 목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좋은 사람이 구석구석 쳐박혀야 이 땅이 살아나는 법, 외진 곳에서 생명 넘치는 삶을 살아야 이 땅이 회복되는 법.
삶을 재는 잣대가 세상에 한가지인 듯, 모든 것에 같은 들이대는 무모함과 어리석음, 그것을 별생각 없이 따르는 또 한번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이라니.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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