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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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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38.질라래비 훨훨
언젠가 소설가 최일남씨가 남북한 간에 서로 알아듣기 힘든 말이 많다며 북한의 ‘조선말 사전’에 쓰인 단어중 ‘질라래비 훨훨’ 이란 말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김천복 할머니께 혹 ‘질라래비 훨훨’이 슨 말인지 아느냐 여줍자 “그럼유, 알구 말구유. 어렸을 때 많이 했지요.” 하며 노래하듯 ‘질라래비 훨훨~ 질라래비 훨훨~’ 손을 옆으로 흔들며 몸동작까지 보여주신 일이 있다.
북한의 조선말사전에는 ‘질라래비 훨훨은 어린아이에게 훨훨 날듯이 팔을 흔들라고 하면서 하는 소리’라고 그 뜻을 풀이고 있다는데, 할머니의 몸동작이 꼭 그랬었다.
동네 할머니가 몸이 아파 몇 번 병원을 모시고 나간 적이 있다. 겨우내 속이 아파 이 병원 저 병원 몇 군데를 다녀보았는데 괜찮다고하며 약을 지어줄 뿐이었는데, 약을 먹어도 배 아픈 거 안나니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은근히 속으로 의사들이 당신 병을 숨기는 거 아닌가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혼자서는 병원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를 모르시는 할머니, 어렵게 부탁을 해 오셔 몇 번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한번은 병원을 나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자꾸 아프다니까 우리 영감두 그러구 딸년들두 그러구 내가 괜히 언구럭을 떤다는 거야.” ‘언구럭을 떤다’고 하셨다.
‘언구럭을 떤다’라는 말은 얼마 전 원주지역 젊은 목회자 모임인 ‘돌봄모임’에서 <우리말 바로 쓰기> 시간을 통해 처음으로 접한 통 모 르는 말이었다.
‘사특하고 그럴듯한 말을 떠벌려 남의 속심을 떠보는 따위, 남을 농락하는 태도’라는 뜻을 가진 말이었다.
우리말에 이런 말이 다 있었구나, 신기했는데 동네 할머니는 그 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다.
그런 말이, 그렇게 사라져가는 우리말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가 우리 말을 잃어간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왜 그런 현상을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럴 시간 있으면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게 낫다고까지 생각하는 것일까.
심각한 상실. 심각한 무너짐이 아닐 수 없다. 집의 기둥이, 축대가 무너져 가는데도 전혀 위기의식이 없는, 그게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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