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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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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079. 여름 수련회
“교회 수련회요? 솔직히 저희는 좋아하지 않아요.” 수원에서 교육전도사를 하는 처남의 부탁으로 여름수련회 장소를 알아보려 부론국민학교에 전화를 했더니 대뜸 전화를 받는 선생님의 대답이 분명했다. 뭔가 기다렸던 말을 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거 뭐라고 하던가요. 고해인지 반성인지, 마지막 날 밤에 커다란 소리 울며 기도를 하는데 그것 때문에 주민들이 잠을 못 자 학교측에 원망을 하는 거예요. 교회측에선 꼭 필요한 시간일지 몰라도 학교측에선 아주 곤란해요. 그것도 일종의 청소년 선도 행사니까 정이나 해달라면 억지로라도 하긴 하지만 솔직히는 안 하는게 좋아요”
첫마디가 미안했던지, 선생님은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그런 기도 안 한다고 약속을 하고서도 번번이 기도와 노래로 약속을 어겨 주민들 대하기가 민망스럽다는 얘기가 다시 한번 반복됐다.
사정은 용암국민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용암에선 부론에선 없었던 이유가 한 가지 더 보태졌다. 작년에 어느 교회선가 수련회를 하며 밤에 촛불을 켜고 순서를 가졌는데, 자칫 불이 날뻔하여 교실을 까맣게 그슬렸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얼마간 받는 임대료가 학교의 아쉬운 재정에 도움이 되어 학교를 빌려줬는데, 올해부턴 아예 빌려주지 말자고 일찌감치 회의를 통해 원칙을 정해놨던 터였다.
마을에 있는 단강국민학교로도 해마다 적지않은 교회가 수련회를 온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깨끗한 개울물 수련회를 하기엔 그런대로 좋은 여건이다. 하지만 교회에서 갖는 수련회를 옆에 서 지켜보자면 걱정이 되기도 하고 때론 낮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하루종일 뜨거운 볕아래 땀흘리며 농사일 하고 다음날 일을 위해 고단한 몸 곤히 쉬는 마을 사람들, 그들에 대한 이해나 배려는 전혀없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해소라도 하려는 양 밤 깊도록 뛰고 소리치고 노래하고 누가 봐도 저건 아닌데 하는 모습들이 너무도 흔하다.
프로그램에도 문제가 있다. 특히나 ‘담력훈련’이니 ‘천로역정’이니 하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울화가 치밀 정도다. 코스라고 잡은 게 그중 으슥한 길, 시간은 늦을 대로 늦은 야밤, 잔뜩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두세명씩 짝을 지어 그길로 내보내는데, 잠시 후 터져 나오는 외마디 비명 소리들, 여기서 “악-!” 저기서 “끼-악!”, 곤히 자다말고 무수 난리라도 났나, 잠을 설쳐 나와 보니 캄캄한 밤길 걷느니 젊은 남녀들, 기가 찰 노릇이다.
어디 그뿐인가. 다음날 일을 나가보니 턱 턱 부러지고 여기저기 깔려있는 담배 잎들, 농사 짓는 사람에겐 그게 돈이고 생활인데. 담배잎 하나 부러지면 갈비뼈 하나 부러지는 것처럼 아깝고 안타까운데, 도시에서 온 학생들 눈엔 잠시 쉬며 깔고 앉기 좋은 방석일 뿐이니, 어찌 그걸 안타까운 일이라고만 넘어갈까.
그런 순서가 교육상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게 빠지면 수련회가 안 되는지, 어쩌면 그렇게들 천편일률적인지.
메마르고 답답한 도시에서 숨 한번 제대로 크게 쉬지 못하던 학생들과 청년들이 모처럼 사골을 찾아 마음껏 즐기며 뛰고 쉬고 어울리는거야 얼마나 좋고 필요한 일이랴만, 가만 지켜보면 뭔가 잘못 되도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신앙’과 ‘수련’이란 이름으로 오지만 실은 어지럽게 놀다만 가는게 아닌가 싶은 딱한 마음이 든다.
기울어져 가는 농촌의 실정을 이해하고, 농촌의 실제 삶이 어떤지 혹 도움 될 일은 없는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런 생각들을 프로그램화 하는 작업이 도시교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까지 해왔던, 해마다 가장 인기 있는 순서로 평가받은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수련회를 갖기 전 ‘수련회를 위한 수련회’를 따로 가져봄이 어떨런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좋은 순서들이 두루 소개되어 여름수련회가 달라지는 계기를 만들어 봄이 어떨는지.
그런 일에 필요하다면 농촌 목회자들도 기꺼이 도움 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두 교회에서 수련회 오나유?” 걱정스레 묻는 농민들의 마음이 “그 학생들 다시 안오나유?” 하는 기대로 바꾸어질 수 있기를
달라진 수련회를 통해서. (얘기마을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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