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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 병원에 누워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9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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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36. 병원에 누워


새벽에 눈을 뜨니 어지러웠다. 그러려니 하고 일어서려는데 빙글, 쓰러지고 말았다. 어릴적 지구본 위에 올라타 실컷 어지럼속으로 빠져들듯 굉장한 속도로 방안이 돌기 시작했다. 회오리속으로 빨려드는 것만 같았고 겨우 기어 일어나 창문을 열었고 그리곤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후 깨어선 밖으로 나섰다. 아내는 산후조리를 위해 수원에 갔고 모처럼 어머니가 집에 들리셨는데 아픈 모습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찬바람을 쐬니 그래도 한결 나았다.
혹 어떨까 싶어 마셨던 동치미 국물을 방안에 잠시 누웠다가 디 토하고 말았다. 또다시 굉장한 속도로 방안이 돌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보건소로 연락을 했고 얼마 후 학래아빠가 차를 가지고 와 원주로 나갔다.
링게르 주사를 손목에 꽂고 한나절을 누워 있었다. 혈압이 90-60으로 떨어져 있었고, 얼굴은 내가 봐도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과로라 했다. 과로. 남의 일로만 알았던 말. 건강에 관한 한 언제나 자신이 있었는데 과로라니, 과로로 쓰러지다니, 천리를 뛰고도 숨이 남아야 한다며 몸이 마음을 못따르는 일이야 말로 부끄러운 일일거라고 늘상 그렇게 생각을 해 왔는데 드디어는 쓰러지고 말다니.
주사를 맞으며 가만히 생각하니 지난 두주간이 내겐 힘에 부친 시간들이었다.
부흥사경회를 앞두고 강사 숙소로 쓸 서재를 꾸미느라 이런저런 일들로 한주를 보냈고 부흥사경회 기간 동안의 긴장, 사경회 다음날 아내가 아이를 낳고 다음날엔 수원으로 아내와 아이를 옮기고 뭐 그런저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일로 쓰러지다니, 전에 모르던 체력의 한계를 맛보는 것 같아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건강에 대한 과신의 어리석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주사를 꽂고 한동안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 병실 맞은편 벽에 걸린 액자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겟세마네 동산 바위에 앉아 두 손을 모아쥔 채 하늘을 우러르며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었다. 사방 어둠뿐 바라볼 곳은 하늘밖엔 없었고, 그런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 하늘 한쪽 끝이 구멍처럼 빛으로 열려 있었다.
사방 칠흑같은 어둠.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확실치는 않았지만 기도하는 예수의 뒷편 어둠 속 희미한 텃치 몇개는 필시 잠든 제자들 이지 싶었다.
게으름 때문이건 약함 때문이건 잠들어서 안된다고, 어둠 속 잠든 제자들은 내내 내게 말을 결고 있었다.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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