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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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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46. 성탄 선물
서둘러 나선다고 나섰는데도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대중없는 버스시간, 손님이 많으면 늦어지고 없으면 일찍 가버린다.
난감했다.
다음날이 성탄절, 아이들에게 전할 선물을 사러 나선 길이었다. 원주 나길 길이 막막해졌다.
다음 차는 네시 반, 그 차로는 원주 나가 일 보고 막차로 돌아오기엔 늦은 시간이다. 망설이다 걷기로 했다.
귀래까지만 가면 충주에서 원주로 가는 버스들이 자주 있으니 귀래까지만 가자. 가다보면 지나가는 차라도 얻어 탈 수 있겠지. 버스를 타면 잠깐 돌아섰던 조부랭이 산모퉁이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바로 옆 강에서 불어대는 바람이 제법 매웠다. 사기막으로 들어서는 단강2리를 지나 용암을 지난다.
외진 동네 지나가는 차도 드물었고 그나마 몇 대 지나가는 차에 손을 들었지만 서지 않았다. 하기사 허름한 잠바에 어깨에 맨 큰 가방, 건장한 체격, 세월이 어느 땐데 함부로 차를 세우겠는가. 아예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허물 벗겨진 듯 밭에서 얼어붙은 캐지도 않은 배추들, 한쪽 구석에 수북이 쌓여 썩고 있는 무, 가시덩굴 속 신이 난 박새들, 허물어져 쓰러진 집 마당가에 놓인 동그란 우물터, 한지 재료로 쓰기 위해 베어 묶어 놓은 닥나무, 빈 들판 어지러이 날아오르는 까마귀 떼.
심심하진 않았다.
버스로 오갈 땐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걸으며 보았다. 인적도 드문 길을 걸으며 왠일인지 자꾸만 눈이 시려왔지만 찬바람 때문일 거라고, 드는 생각을 꾹꾹 눌렀다.
이 모든 일을 기쁨으로 받아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새삼스레 자신에게 일렀다.
어둠 속 총총 별들을 이고 돌아왔다.
작은 것이지만 정성 깃든 선물을 마련한 것 같아 마음은 가벼웠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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