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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17. 햇살이 그립다
가물어 물 대던 길다란 나일론 호스가 곳곳에 그대로인데 이번엔 물난리다. 그칠 줄 모르는 빗속, 삽 들고 이리저리 물고 트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비도 좀 어지간히 와야지, 밤새 빗소리에 한잠도 못 잤어.”
밤새 잠 못 이룬 건 그렇게 얘기한 동네 아저씨 한분만이 아니다. 김영옥 집사님네 강가 밭은 또 물에 잠겼다. 뽑을 때가 다 됐던 무가 그대로 썩고 말았다.
강가 밭, 그 넓은 밭의 대부분인 당근, 밭떼기로 한참 당근을 팔 요즘, 또 말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굵어가던 당근이 빗속 짓무른 탓인지 뿌리로부터 썩어 들어오는 것이다.
미리 선금주고 밭떼기로 이 밭 저 밭 산 사람은 아예 앓아누웠다. 사정이야 어찌됐건 팔았으니 됐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해마다 겪으면서도 해마다 새로운 대책 없는 아픔.
잠깐의 햇볕도 없이 모처럼 쉬더니만 내일부터 또 많은 비가 올 거라 했다.
햇살이 그립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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