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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215.생명의 향내
옹기종기 뒤꼍에 돋아난 나생이(이곳에선 냉이를 나생이라 합니다.)를 캐 된장을 풀고 국을 끓이면 신기하게도 시원한 맛이 베어납니다.
된장의 얼큰함과 함께 상큼한 시원함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나생이에서 풍겨나는 시원함,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뜻 싶습니다.
나생이의 여린 뿌리마다와 낮은 키로 퍼지는 잎새 마다엔 겨울의 내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두껍게 땅을 얼렸던 된 추위와 찬 바람, 혹은 수북히 쌓인 흰 눈, 바로 그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쌓인 눈이 풀려나오고, 된 추위가 녹아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쩜 나생이의 시원함은 겨울 내음 그 자체 보다는 겨울의 혹독함을 이겨낸 한 생명의 향내인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다는 것, 그것의 소중함을 흔한 나생이는 나직히 시원함으로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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