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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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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32. 낫 한자루
뒷결 봉숭아도 축축 늘어지는 한낮, 논에 나와 논둑 풀을 깎고 돌아서는 변 관수할아버지 뒷춤에 낫이 들렸습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더니 구부러질 대로. 구부러져 ‘기역자’를 닮은 허리 뒤에 낫이 들렸습니다.
인사를 나누며 잠깐 사이였지만 할아버지 뒷춤의 낫을 보는 마음이 부끄럽습니다. 할아버지 낫은 닳을 대로 닳아 거반 날이 위쪽 끝 에 닿아 있었습니다. 숫돌에 갈고 또 갈아 점점 날이 닳은 것이지요.
아껴쓰던 연필 몽당연필 되듯 할아버지 낫은 풀잎처럼 가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퍼렇게 날이 선 할아버지의 낫!
함부로 쓰다 보면 이렇게 고장 나고 저렇게 망가져서 한번 날을 갈아 쓰지도 못하고 버리기가 일쑤인데, 할아버지 낫은 닳고 또 닭도록 여전히 퍼런 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뒷춤에 들고 가는 낫 한자루, 풀잎같이 가늘어진 낫 한자루를 보는 마음이 영 부끄러운 것은 아무래도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태도가 할아버지 낫에 비해 형편없이 헤프다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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