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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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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47.아욱죽과 개똥벌레
변한기 목사님
들판에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이 한결 여유 있어 보입니다.
입춘이 지난 절기 탓이기도 하지만 시커멓게 쥐불을 놓은 개울둑이 이젠 분명 봄임을 확연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부는 바람은 여전히 차지만 찬바람 속에는 어느덧 서너 가닥 훈훈함 이 섞이기 시작입니다.
서재 책상에 앉아 한참 밖을 내다 보다가 창문을 반쯤 열었습니다. 확 방안으로 밀려드는 바람이 시원하고 상쾌합니다. 마음속까지를 시원하게 합니다.
평안하셨는지요. 며칠 부탁받은 일이 있어 다녀왔더니 목사님 보내주신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밀린 우편물이 제법이었고 사실 늦은 밤 돌아와 몸도 몹시 피곤했지만 그런 것 잊고 편지부터 읽었습니다. 그리움과 반가움 때문이었습니다.
편지 중 말씀하신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그리워지는 절실한 마음’은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확 퍼져가는 그리움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보내준 ‘얘기마을’을 통해) 아름이 얘기를 읽다가 속장님네서 먹었던 아욱죽이 또 먹고 싶어졌습니다. 나는 그때 아욱죽을 어머님의 젖처럼 영혼을 품어주는 고향의 내음을 마시듯 먹었으니까요.”
아욱죽 얘기에 그리움이 더했습니다. 모처럼 멀리서 찾아오신 귀한 손님께 죽을 대접해 어쩌냐며, 안식년을 찾아 고국을, 단강을 찾은 목사님께 아욱죽 대접함을 그렇게도 송구스러워하던 속장님은 지금 까지도 그 일을 미안함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고 때마다 말씀드렸지만 귀하신 분께 ‘밥 대신 죽’을 대접한 일을 속장님은 여전히 송구스러워! 할 뿐입니다.
그날 그 저녁을 어찌 쉬 잊겠습니까. 속장님이야 ‘죽’을 대접하는 게 영 송구스러운 일이었지만 저는 그게 제일 좋은 듯 싶었습니다. 그건 그만큼 목사님을 ‘알게’ 된 까닭이기도 했습니다.
고국에서의 아욱죽을 뜨며 목사님은 내내 가난했던 유년 시절, 어릴 적 기억을 드시는 것 같았었지요. 고기 흔한 미국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아니 이 땅 도시에서도 벌써 사라진 지 오래인 그 본래의 아욱죽을 모처럼 고국을 찾아 들게 되시다니, 아욱죽을 드시며 떠올리는 어릴 적 기억을 저도 함께 마주 앉아 나누는 것 같아 저 또한 마음이 아늑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걸어 내려오던 어둔 밤길, 개구리 요란하게 울던 어둠에서 보란듯이 개똥벌레들이 날았지요. 파란 불빛을 꽁지에 피워내며 어둠 속을 헤엄치는 반딧불 무리, 그건 기가 막힌 축하 비행이었습니다.
모처럼 고국을 찾은, 그리움으로 흙을 찾은, 유년의 가난한 기억을 소중하게 되찾은 이에게 전하는 빛들의 요란한 박수 소리였습니다.
이 땅에 사는 저도 반딧불 무리 본지가 언젠지 모르는데, 아, 글쎄 그 밤, 이날만큼은 그럴 수 없다는 듯 반딧불 무리가 무리 지며 날다니요.
잊혀진 그리움과 함께 사라졌던 개똥벌레들이 되살아난 그리움과 함께 그렇게 되살아났지 싶었습니다. 아욱죽을 ‘어머님의 젖’처럼, ‘영혼을 품어주는 고향의 내음’처럼 먹고 마셨다니요. 그 얘기에 괜히 눈물겨웠습니다.
살아가며 다른 일을 다 잊는다 해도 언제고 “아욱죽!” 하면, 무리 지어 날던 개똥벌레들과 함께 우리들은 대번 그날 밤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또렷한 기억의 언저리를 개똥벌레들은 요란하게 어김없이 날겠지요.
‘아욱죽’은 목사님과 저를 대번 하나로 묶어주는 영원한 기억의 끈이 될 듯 싶습니다.
따뜻한 기억. 가난하지만 정겨운 시간들, 아욱죽과 함께 늘 하나로 돌아가는 우리들의 시간은 ‘따뜻함’과 ‘가난함’과 ‘정겨움’일 것이 고 그곳이 결국은 우리의 고향임을 고맙게 인정하고 싶습니다.
새로 마련하셨다는 서재에서 혼자 차를 마실 때마다 저를 그리워하신다는 목사님 말씀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그런 시간이, 그런 뜻밖 의 은총이 다시 한번 허락될 수 있을런지요.
골짜기 한쪽 구석 허름한 흙집을 땀으로 지어볼까 합니다. 언제고 올라가 쉬고 생각하고 무릎 꿇을 수 있는 ‘영혼의 집’을 지어볼까 합니다. 집이 다되면 저라도 먼저 주머니를 털어 목사님을 모시고 차를 나누며 밀린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잠꾸러기 산타’를 사랑하신 목사님, 저도 목사님을 사랑합니다. 1996.2. 한희철 드림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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