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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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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78. 붉은 밭
이틀간 겁나게 비가 내렸다. 천둥과 번개까지 야단이었다. 철철대며 마구 치닷는 개울물이 여간이 아니었고, 강물도 어느새 불어 집에서도 대번 눈에 띌 정도였다.
비가 얼추 멎은 뒤 강으로 나가보니 강물이 잔뜩 불어 저만치 강 끝이 아득해 보였다. 뻘건 강물에 떠내려가는 풀이며 나무조각등이 이내 눈에서 사라지곤 했다.
황산내 개울이 강과 만나는 곳엔 강물이 역류해 물의 높이가 제법 높아져 있었고 매래 산모퉁이 끝에 붙어있는 밭의 절반쯤은 벌써 물에 잠겨 있었다. 감자를 캐낸 밭이야 아무려면 어떠냐만 아직 잎을 덜 딴 담배밭이 문제였다.
덕은리 강가 밭이 이상하게 붉어 보였다. 무얼 심었길래 밭이 저리 붉나 가까이 가보니 웬걸, 당근을 그냥 갈아엎은 밭이었다.
때가 지나도 당근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고, 굵다랗게 잘 익은 당근들이 푹푹 밭에서 썩어들어가자 그냥 그대로 밭을 갈아엎고 가을 무씨를 뿌렸던 것이었다.
어떤 놈들은 밑둥을 하늘로 향하고 어떤 놈들은 뚝뚝 허리가 부러져 그 많은 당근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애써 밭을 갈고 씨 뿌리고 비료 주고 김매고 정성으로 잘 키운 당근을 그냥 갈아 엎어야 하는 농부의 마음은 무엇일까. 널저분히 당 근이 나자빠진 하넓은 강가밭. 피를 흘린듯 밭이 붉었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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