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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사랑의 배신자여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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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23. 사랑의 배신자여

 

“이젠 알았어!” 뭔가 대단한 것을 깨친양 집으로 들어서며 자신있게 얘기하자 “뭘 알았다는 거예요?” 하며 아내가 묻는다. 

“당신, 우리 동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뭔지 알아? 18번 말이야.” 웬 생뚱한 소릴 하나, 아내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건 말야” 아내에게 생각할만한 시간도 주지 않고 앞뒤 상황설명도 없이 대답부터 했다. “두개인데, 하나는 배신자여 고 또 하나는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야.”

대강 눈치를 챈 아내가 실없이 웃는다. 

그날은 섬뜰 사람들이 모두 모여 쓰레기장을 치운 날이었다. 작실로 올라가는 산모퉁이엔 동네 쓰레기장이 있고, 쓰레기장엔 이따금씩 가져가는 쓰레기차가 있는데, 그날은 다함께 모여 쓰레기차만을 치우기로 했다. 

쓰레기 종량제가 시작되어 규격 봉투에 담지 않은 쓰레기는 버리지 말아야 하는데, 홍보도 부족했고 인식도 부족했던지라 이런저런 쓰레기가 예전처럼 쌓여 있어 그걸 모두 치워내기로 했던 것이었다.

묻을 건 묻고 태울 건 태우고 규격봉투에 담아 버릴 건 제대로 봉투에 담고, 온 동네 사람들이 전부 나서니 일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일을 마친 마을 사람들이 승학이네로 모였는지 승학이네 집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승학이네는 노래방 기계가 있다. 방앗간도 하고 트랙터도 있어 그중 살림이 나은데다 젊은 부부, 큰맘 먹고 노래방 기계를 들여놓았다. 

쿵짝 쿵짝 신나는 반주에 맞춘 마을 사람들의 노래 소리는 내 서재에까지 크게 들려왔다. 덕분에 난 마을사람들의 노래를 책상에 앉아 기분좋게 감상하며 한나절을 보낼 수 있었다. 

노랠 듣다 보니 그중 많이 나오는 노래가 바로 그 ‘배신자여’ 와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였다. ‘사랑의 배신자여’ 하는 노래와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하는 노래는 때마다 애절하게 들려왔다. 

삶에 대해 걸었던 크고 작은 기대와 꿈들. 하지만 살아가는 현실은 가졌던 꿈과 너무나 거리가 멀고, 회한 어린 삶을 두고 누구를 따로 원망할까, 스스로 삭히며 노래로 달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가깝게 다가왔다.

“사랑의 배신자여”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노래가 그 대목에 이르면 나는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하고 있었다.(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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