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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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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630. 농사꾼의 외출
속초 대대리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 최 목사에게 전화를 했다. 연초라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 했지만, 어떻게든 구했으면 좋겠다고, 친구에게 지우는 부담을 모른척한다.
마침내 걸려온 전화, 대명콘도에 방을 한칸 구했다는 얘기였다. 값도 아주 싼 값이었다. 이내 병철씨에게 전화를 건다. 다음날 떠나려면 시간이 없다. 아무리 간단하더라도 챙길 짐은 있는 게 아닌가.
다음날 이른아침, 병철씨와 병철씨의 아내 명옥씨는 먼 길을 떠났다. 규성이와 아름이는 막내 고모인 문영이가 봐주기로 했다.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 좋은 떠남인지 떠나 보내는 마음까지가 여간 흐뭇하지를 않았다.
어느 날 병철씨와 살아가는 얘기를 했다. 일 속에 파묻혀 정신없이 살아가는 농촌생활, 꼭 그래야만 하는 건지, 삶의 여유와 기쁨을 외면한 노동이 건강한 건지, 멋있는 농사도 가능한 것은 아닌지, 그런 얘기들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허구한날 일만하고 살아가는 삶이, 그 단조로움이 서로의 가슴속 켜켜 쌓아놓을 허전함이 내게는 두려움으로 여겨졌다. 삶의 여유와 가정의 소중함, 일이 그것을 영 가로막아선 안 되지 않겠는가.
마침 결혼기념일, 병철씨는 떠날 계획을 세웠고 그 얘길 들은 나는 내 일인 듯 신이나 친구에게 수선을 피웠던 것이었다. 결혼 5년 만에 처음으로 갖는 둘만의 나들이, 할 얘기가 얼마나 많을까. 나누는 얘기가 얼마나 귀할까.
콘도라고 뭐 돈 많은 이들만 가라는 법 있나, 농사꾼도 한번 쯤 들려볼 수 있잖은가.
그들을 축복하듯 눈이 수북히 왔고, 삼일 후 돌아온 두 사람에게 선 동해의 푸르름이, 설악의 넉넉함이 표정마다 넘쳐나고 있었다.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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