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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멀리 사는 자식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417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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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40.멀리 사는 자식들


“월급은 12만원 받는데 엄마, 저녁이면 코피가 나와.” 얼마 전 순림이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한다.
중학교를 마치곤 곧바로 언니가 있는 서울에 올라가 낮엔 방림방적인가에서 일하고, 밤에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는 순림이. “돈 벌기 그렇게 어려운 거란다.” 엄마인 김집사님은 그렇게 말했다지만, 마른 침 삼키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그래, 순림아, 삶이란 때론 터무니없이 힘겨운 것일 수도 있나부다.
천근만근 저녁마다 두 눈이 무거워도, 선생님 뭔가를 쓰는 칠판에 낮에 일한 실올이 바둑판처럼 아릿하게 깔리어도, 두 눈을 크게 뜨렴, 네가 마주한 것, 배우는 것, 단순한 공부가 아닌 엄연한 삶이기에.
연실 눈물을 닦으셨다. 얼마 전 자식을 모두 떠나보내고 난 뒤의 텅 빈 집에서 심방예배를 드리며 집사님의 어머니는 그렇게 눈물을 흘리셨다.
어린아이 하나가 어른 몇 명을 당한다는데, 매 한번, 큰 소리 한번 모르고 키운 손주 자식들, 녀석들의 얼굴과 웃음이 온통 방안마다 마당마다 가득한데, 이젠 집안이 텅 비었다.
떠나간 아들은 공장에 잘 나가고 있는지. 무슨 기계를 다룬다 하는데 다치지나 말아야 할텐데, 며느리와 손주들이 얻었다는 방은 어떤지, 연탄가스 새는 건 아닌지.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삼아 놀던 손주 손녀는 지금쯤 무얼 하는지.
전엔 일 마치고 돌아올 저물녘이면, 집안에선 연기가 피어 올랐고 -그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표시이며, 가족에겐 어서 오라는 더 없이 푸근한 손짓이다. - 집안에 들어설라치면 달려나와 인사하던 손자 손녀, 그리고 웃음 많은 며느리, 그럴 때면 하루의 힘겨움이 문밖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는데, 며느리 떠다 준 물에 하루의 피곤을 씻고, 모두들 한 자리에 둘러 앉아 저녁을 들면, 그러면 족했는데, 피어나는 얘기, 피어나는 웃음, 그게 좋아 한낮 논밭에서의 시간도 견딜 만 했는데, 이젠 저녁 연기도, 달려 나오는 식구도, 기다리는 저녁상도, 둘러앉을 사람도 없다.
이사하던 날 밤, 이사 잘 했다고 전화 한 이하근 집사님은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못했다 한다. 서로가 전화통만 붙잡고 시간 모르고 있었으리라. 문명의 편리를 따라 이곳에도 한 두 집 씩 전화가 놓이고 가끔씩 그렇게 전화가 온다.
떠나간 자식들의 전화가 온다. 안녕하시냐고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멀리서 사는 자식들.(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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