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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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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60. 어느날
처음엔 잘못 봤지 싶었다. 날이 몹시 춥던 저녁. 마침 다녀가는 손님을 배웅하기 위해 교회 마당으로 나가는 순간 교회 앞 방앗간 앞마당에 누군가가 넘어졌는데 넘어지는 모습이 하도 기가 막혀 순간적으로 잘못 본 거지 싶었다.
누군가가 앞으로 고꾸라졌는데 그야말로 통나무 쓰러지듯이 손도 땅에 못 짚고 그냥 얼굴로 넘어진 것이다. 콘크리트 바닥이었다.
“어?” 외마디 탄식과 함께 잠시 멍하니 있다 달려가 보니 쓰러진 분은 다름 아닌 김을순 집사님이었다.
얼굴을 돌려 안자 그새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해버렸다. 얼른 안고 사택으로 들어오는데 그 잠깐 사이 눈이 뒤집히며 돌아가기를 시작했다. 정신을 잃은 것은 물론이었다. 사택 마루에 눕히자 온 몸은 벌써 차가워져 가고 있었다. 깊게 패인 턱에서는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몸이 허약할 대로 허약한 집사님이 이렇게 품에서 졸지에 가시나, 당황한 만큼이나 허망한 마음이 들었다.
피를 닦고 손과 발을 주무르고 뒤따라 들어온 사람들과 함께 응급처치를 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남편이 학기씨가 바늘로 집사님 손을 다 땄다. 한참 만에야 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집사님 혼자 자리에 앉기까지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야 했다.
보건소장님도 달려오고 딸 규성이 엄마도 달려오고 한바탕 소동이 지난 후 집사님을 모시고 원주 시내 병원으로 나왔다. 이미 퇴근 후의 시간, 응급실이 있는 의료원으로 갔다.
속 입술이 터져 흔들거리는 이 사이에 입술이 끼었을 정도로 집사님은 겉보다도 속입술이 더 상해 있었다. 터진 입술을 안팎으로 꿰매고 있는데 누군가가 병원 응급실 문을 박차며 뛰어 들어왔다.
“얘를 좀 살려주세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얘기하는 젊은 사람의 품엔 작은 여자아이가 안겨 있었다. 두세살 됐을까 싶은 아이였는데 웬일인지 아이의 얼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차에 치었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모습을 본 의사는 대뜸 큰 병원으로 가라 했다. 그러나 앰블런스가 오기도 전에 침대에 눕혀져 있는 아이의 숨은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괴로운 듯은 온 몸을 몸부림치는데, 아이가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몸만 쥐어짜듯 비틀어대는 그 모습이 너무 괴로워 보여 그냥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어레스트!” 때가 늦었음을 직감한 의사들이 모두 아이에게 달라붙었다. 의사래야 당직 중인 젊은 사람 하나, 그리고 간호사들이 전부였다. 집사님 입술을 꿰매던 의사가 꿰매던 일을 중단하고 같이 아이에게 매달렸다.
주사를 놓고 호스를 집어넣어 피를 빼내고 가슴을 압박하고, 의료진들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괴로움에 몸부림하던 한 작은아이는 그렇게 괴로워만 하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이를 데려온 젊은 사람 내외는 응급실 바닥에 꿇어 없드려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 살려달라 눈물로 애원했지만 아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같이 서서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아이를 지켜보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식은땀이 나며 쓰러 질듯 어지러워 응급실 밖 복도로 나와 쓰러지듯 의자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온몸 구석구석으로 모든 기운이 다 빠져 달아나는 것 같았다.
응급실 안에서 통곡 소리가 들려 다시 들어가 보니 아이의 어머니가 그제사 연락을 받고 달려와 숨진 아이를 안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맞벌이 하는 부부지 싶었다. 놀이방을 보내 놓고 회사에 갔다가 퇴근할 때쯤 연락을 받고 달려왔을 터이니 얼마나 기가 막힐까.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그렇게 숨이 졌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고 하염없이 아이 머리만 쓸어내리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며 예쁘게 빗겨 주었을 머리에는 작은 리본이 양쪽으로 예쁘게 매달려 있었다. 동물처럼 울부짖다가 잠자는 아이를 품에 안은 듯 더없이 조용하기도 했다가, 아이어머니는 한 시간이 넘도록 아이를 품에 안고 일어설 줄을 몰랐다.
결국 집사님은 밤늦게 다시 마취 주사를 맞고 꿰매다 만 입술을 다시 궤맬 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나오며 보니 그 작은 아이가 하얀천에 싸여 있는데 아이가 숨을 안 쉰다는 사실이 그렇게 이상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이의 죽음으로 집사님 다친 것은 어느새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있었지만 차를 몰고 단강으로 들어오는 길, 자꾸만 터져 나오는 한숨을 어쩔 수 없었다.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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