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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못 씨여 먹는 것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52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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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815.못 씨여 먹는 것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곽영애 간사와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학생 3명이 단강을 찾았다. 전국적으로 농촌 주부들의 농약 중독 실태를 조사하고 있는데, 그중 단강 주부들의 실태도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서른 몇 가지던가, 긴 항목의 설문을 차례대로 읽으면 거기에 따라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버섯장에서 일하는 준이엄마를 만났다. 버섯에 물을 주고 있었다. 버섯에 물을 주며 얘기들이 오고 갔다.
농약은 대개 8-9시간 주는데 답답해서 안전복은 안 입고, 하면 마스크나 쓰는 게 고작이고, 농약을 주다보면 차 멀미 하듯 어지러워지고 그러다간 쓰러진 적도 있고, 막 토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가만히 누워 쉴 뿐이고, 땅과 물이 오염되고 그걸 먹는 사람들의 생명에도 지장이 간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농약을 치고, 벌레를 당할 수 없고 모자라는 일손을 메꿀 길 없어 농약을 뿌리는데 할수만 있으면 안치고 싶고, 농약 친 둑의 풀을 먹고 소가 쓰러지는 것을 본적도 있고, 아파도 병원은 멀고... 그런 대답이었다.
길에서 만난 종설이 엄마도, 승학이 엄마도, 담배밭 매던 미영이 엄마도, 텃밭 매던 정희 엄마도 얘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준비해 온 김밥을 놀이방 어린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선 매래 담배밭으로 내려갔다. 시원한 강물이 흘러가는 강가 밭, 그러나 해마다 홍수가 나면 번번이 물에 잠기곤 하는 밭이다. 김영옥 속장님네 담배 밭을 매는 날이라 동네 아주머니 여러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잠깐 소개를 드리곤 설문조사를 하는 동안 저만치 점심준비를 하고 있는 속장님에게로 갔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장작으로 불을 때며 속장님이 부지런히 점심을 짓고 있었다. 집에서 차려 내오는 것보단 그렇게 밭에서 해먹는 것이 따뜻한 밥 먹어 좋고 손도 덜어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얘길 듣다 보니 놀라운 일이 있었다. 쌀 씻고 쌀 안친 물을 옆의 강물을 퍼다 했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 담글 땐 장맛 좋으라고 일부러 강물 떠다 담궜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었던 터였지만 몇 년을 사이로 강물이 더러워져 돌엔 이끼가 끼고 물도 탁해져 영 버림받은 줄 알았는데 그래두 속장님은 그 강물을 퍼다가 점심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먹는 물은 집에서 가져오구 밥 짓는 물만 강물 퍼다 했어유. 전엔 정말 깨끗했는데 이젠 전만 못해유. 다 씨여(씻어) 먹어두 물은 못 씨여(씻어)먹는 법이랬는데...”
‘다 씻어 먹어도 물은 못 씻어 먹는 법’이라는 속장님의 말은 공해로 병들어가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선견자의 말처럼 들려왔다. 땅도 사람도 물도 병들어가는 치명적인 악순환을 가장 정확하고 나직하게 지적해 주고 있었다.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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