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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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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491.첫번 편지
성경학교 교사강습회를 마치고 늦은 밤 돌아오니 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원에 사는 대학생이었다. 단강 이야기가 담긴 책 <내가 선 이곳은>을 보고 방학을 맞아 ‘책 속의 마을’을 찾아왔던 것이다.
실지로 단강을 와 보고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렸던 단강은 그야말로 외진 깡촌이었는데 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지난 5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아담한 예배당이 선 것은 물론 길도 말끔히 포장되었다. 단강을 깡촌으로 그리며 뭔가 도움이 될 일이 많을 것 같아 일주일 정도 봉사를 해야지 하고 왔는데 그런 기대가 무너진 듯 서운한 표정이었다.
교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살며시 뒷 문이 열렸다. 광철씨였다. 낮에 저수지께로 일을 갔다가 우렁을 잡았다며 우렁을 한 봉지 담아 가지고 왔다. 청년은 “아, 광철씨!” 하며 무척이나 반갑게 광철씨 손을 마주 잡았다. 책을 통해 익히 알던 이름, 보고 싶었던 사람, 광철씨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신기하고 좋다.
다음날 치를 시험공부를 하러 온 아이들이 있어 그들을 만나는 동안 광철씨와 그 청년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눈다. 그 모습이 정겹다.
마침 다음날 광철씨의 텃밭에 마늘을 뽑을 일이 있어 함께 일을 거들기로 했다고, 기다렸던 일감 구한 듯 그 청년은 반가워했다.
광철씨도 몹시 들떠있었다. 누군가 내 집을 찾다니, 또한 일을 거들겠다니 이제껏 그런 일이 언제 한번 있었던가, 기쁨 참는 웃음이 얼굴 가득했다.
그러나 신이 나 인사하고 올라가던 광철씨는 얼마 후 다시 내려왔다. 그 청년 올라오지 않도록 목사님이 얘기 잘 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 묻자 광철씨는 우물쭈물 대답을 못 했다.
그때 난 광철씨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았다. 그것도 분명히. 새참이며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데 도무지 그걸 마련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있는 찬을 내면 되지 않겠냐는 그 흔한 말도 하지 못했다. 뻔한 살림살이 이었기 때문이다. 알았다고 그렇게 얘기하겠다고 광철씨를 올려 보냈다.
다음날 강습회 일로 다시 원주를 나가며 그 청년에겐 사실대로 얘기를 했다. 일을 하되 세참은 없고 점심은 교회로 내려와 먹으라고 일렀다. 먹거리 때문에 누군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일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강습회를 마치고 늦은 밤 들어왔을 때 그 청년은 얼굴이며 손이 벌겋게 타 있었다. 난 대뜸 점심에 대해 물었고 청년은 말보다도 웃음으로 대답을 먼저 했다. 맛있는 점심을 광절씨네서 먹었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기가 막힌 점심을 먹었다. 국수를 전기밥통에 삶아 먹었으니 그런 점심을 또 어디서 먹겠는가.
얼마 전 중고 흑백텔레비전을 구하기 전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유일한 가전제품이었던 광철씨네 전기밥통, 거기에 물을 끓여 국수를 삶고 뚱뚱 부른 국수를 행여 광철씨 마음 아플까 두 그릇 가득 비우고..., 보나마나 뻔했을 맨바닥 간장 종지 하나.
뜨거움이 확 속으로 번져 나갔다. 고마웠다. 차갑게 버려진 광철씨 외로운 가슴으로 불 하나 밝혀 찾아 준 따뜻한 가슴.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눌 때 광철씨가 자랑스레 웬 쪽지 하나를 보여 준다. 광철씨 집을 다녀간 청년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였다.
더듬더듬 광철씨는 편지를 쓸지도 모른다. 생의 첫번 편지를.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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