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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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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98.새벽 뒷산
도토리를 주웠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뒷동산에 올라 도토리를 주웠습니다. 야트막한 교회 뒷동산엔 미끈한 참나무가 많습니다.
투둑투둑, 새벽 안개 걷히지 않은 이른 숲은 이슬 떨구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선선한 공기가 눈에 보일 듯, 손에 잡힐 듯 맑습니다. 낙엽을 헤치며 밤 사이 떨어진 도토리를 줍습니다.
혹은 오솔길 위에, 혹은 낙엽 밑에 미끈한 도토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발에 사각이며 밟히는 낙엽 소리가 참 듣기 좋습니다.
몇 해를 두고 겹겹이 쌓인 낙엽이 안으로 안으로 자신을 썩혀 숲의 나무를 키우고 있음을 배웁니다. 꺼칠꺼칠한 참나무 껍질도 오랜만에 만져봅니다.
두툼한 소나무 껍질을 배 모양으로 깎아선 가운데를 파내고 나뭇잎 돛 달고 뒷꽁무늬에 송진을 묻혀 물가에 뛰우던 어릴 적 기억이 스쳐갑니다.
빨갛게 물들어가는 키 작은 단풍들이 여기저기 몸 치장에 한창입니다. 가을 산은 바로 저 어린 단풍에 의해 곱게 묻드는 것이지 싶습니다.
문득 어버니 생각도 납니다.
김밥을 말아가지고 해마다 가을이 되면 고향 장앗말 뒷산으로 올라 어머니와 도토리를 땄습니다. 겨울이 되면 집에서 해 먹는 묵도 묵이었지만, 산에서 보내는 하루의 시간이 더욱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도토리를 다 주워가면 겨울철 다람쥐는 뭘 먹고 사냐고, 도토리 줍는데 정신 팔린 내게 말했던 어린 조카 생각도 납니다.
도토리 한 웅큼 주워 내려오는 길, 놀랄만큼 가슴이 텅 비었습니다.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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