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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가는 장마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2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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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67. 가는 장마


오랫동안 가물어서 어려웠는데, 이번엔 장마비로 고생이다. 곳곳에 논둑이 터진 것은 물론, 겁나게 불어난 강물에 강가 밭이 잠기기도 했고 -작년에 이어 김집사님네 담배 밭이 또 물에 잠겼다.- 아랫말 미진이네는 수박을 가지고 시장에 나가 한 통에 60원씩 받고 팔았다 한다. 그나마 작실엔 한통도 못 팔은 집이 있다 한다.
집에 놀러 온 종순이와 은옥이가 아내한테 ‘부엉이 세 마리’율동을 배운다. “커다란 고목에 부엉이 세 마리 살았어요. 아빠 부엉이가 ‘떡 해 먹자 부엉’, 엄마 부엉이가 ‘쌀 떨어졌다 부엉’ 애기 부엉이가 ‘해먹자 부엉’”
한참을 배운 종순이가 저녁 무렵 교회 마당에 모인 아이들 앞에서 차렷, 경례를 한 다음 자랑스레 ‘부엉이 세 마리’를 한다.
“커다란 고목에 지렁이 세 마리가...”종순이는 자꾸만 부엉이를 지렁이로 바꿔 했다.
저녁을 먹는데 승혜와 종숙이가 왔다. 뒷짐에 무엇인가를 부끄럽게 감춰가지고 보니 그림이었다.
수박, 참외, 딸기, 파, 고추, 감등 크레용으로 그렸는데, 오랜만에 대하는 크레용 그림의 질감이 여간 정겹지 않다. 교회 마당에 나가 블록을 깔아주자 아이들이 교회를 그린다. 십자가를 너무 크게 그리기 시작한 승혜였지만 완성된 그림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림은 쉽게 단순화되어 있었고 색깔도 자유로웠다. 오토바이 타고 지나가던 작실 반장 병철씨가 수박 두 통을 건네준다. 아이들과, 그리고 일  마치고 돌아오는 동네 어른들과 나눠 먹는다. 맛이 참 달다.
문득 품에 안은 소리와 함께 쳐다본 하늘, 온통 먹구름뿐이던 하늘 군데군데에 노을이 번졌다. 장마가 가려나보다.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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