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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풍경화 속 풍경처럼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99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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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53.풍경화 속 풍경처럼


어린이날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를 마을마다 붙이고 온 백수, 갑수, 종근,   진관이와 함께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염태 저수지로 우렁을 잡으러 길을 나섰는데, 보니 저쪽 논에서 종하네 식구가 일을 하고 있다. 돕고 가기로 하고선 모두들 논으로 갔다.
종하와 종석이 종일이가 엄마 일을 도와 논에다 짚을 썰어 뿌리고 있었다. 종하 아버지는 얼마 전 돌아가셨다. 아직 젊은 나이였는데도 병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노모와 33세의 아내, 그리고 어린 3남 1녀의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제일 맏이인 용자가 이제 중1, 나머지 동생들은 모두 초등학교에 다닌다. 아버지가 떠남으로 모자를 수밖에 없는 일손을 아직 어린 그들이 땀 흘리며 메우고 있었다.
모두가 달라붙어 작두로 짚을 썰기도 하고, 썰은 짚을 뿌리기도 하니 일이 쉽게 끝났다. 일이 끝나자 종하와 종석이 종일이도 엄마가 허락을 해줘 같이 저수지로 갈 수 있었다. 백수가 가져온 경운기에 모두들 올라탔다. 좋은 버스는 아니지만, 오늘 경운기는 우리들의 자가용, 신날뿐이다.
신작로를 신나게 달려 저수지에 이르자마자 양말과 신을 벗고 바지를 걷어붙인 채 물로 뛰어드는 아이들, 벌써 우렁들을 잡아 밖으로 내던진다. 진관이와 종하, 종석이는 아예 옷을 벗고 텀부덩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휘 돌아온 족대를 들 때마다 거기 가득 걸려 나오는 파란 물이끼와 제법 자란 올챙이들, 한 두마리 미꾸라지들, 장난치듯 걸려드는 방개, 그리고 이끼 밑 우렁 몇 마리다. 그렇게 족대로 훑기도 하고, 손으로 더듬기도 하며, 제법 많은 우렁을 잡았다. 우렁을 잡고선 저수지 가장자리 모래더미에 모여 두꺼비집을 지었다.
“두겁아 두겁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10분의 시간을 주고 누가 제일 크게 짓나 시합하기로 했다. 모래 속 손을 넣고 그 위를 두드리던 어릴 적 기억, 모두들 열심히 집을 짓지만, 욕심이 지나칠 때마다 무너지는 두꺼비집 -그건 인생살이에 있어 귀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두꺼비집 짓기를 마치고 물수제비뜨기 시합을 하였다. 물수제비뜨기라는 우리말의 아름다움!
납작한 돌을 5개씩 골라 가지고 와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던진다. 동그란 물징검다리를 만들며 “퐁 퐁” 물위를 뛰어가는 돌맹이. 그리고 나면 동그랗게 동그랗게 번져가는 돌 지난 자리들, 징검다리의 개수를 세어 제일 작은 사람이 한 사람씩 떨어져 나가다가, 잘못 던지면 한번이나 두 번째에 폭 하고 돌맹이가 빠져버리지만, 잘만 던지면 제법 길게 물 위를 달린다. - 심심하건 울적할 때면 무심히 물 위에 돌 던졌던 어릴 적 기억, 문득 물결처럼 살아온다.
돌아오는 길, 백수와 달리기 시합을 했다. 양말을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나누어 넣고 신발을 벗어 양손에 들고 저 앞에 보이는 전봇대까지 맨발로 달리기다. 신나게 달려 헉헉 숨을 몰아쉬며 벌러덩 신작로에 드러눕는다. 하늘이 넓다. 아이들과 웃으며 주일 오후 한나절이 그렇게 갔다.
풍경화 속의 한 풍경처럼.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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