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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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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18. 담배 바치는 날
입담배 수매가 있는 날이다. 해마다 부론교회 옆 공터에서 하더니 올핸 더 외진 곳, 부론에 서 손곡으로 들어서는 갈림길 맞은 편 강변에서 수매를 했다.
잎담배 농사를 졌던 온 마을 사람들이 담배를 바치러 모두들 나갔다. 담배수매하는 걸 굳이 사람들은 ‘바친다’고한다. 그만큼 공이 들어갔다는 뜻이기도 하겠거니와, 농사를 지었을 뿐 등급을 매기고 값을 주는 건 분명 저쪽인지라 그만한 거리를 ‘바친다’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담배를 말리는 벌크 기계가 좋아졌고, 담배 잎 말리는 것도 척척 철로 철해 매달면 그만이어 일일이 불 때고 한 잎 한 잎 줄로 묶던 옛날(옛날이래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 그렇게 했지만)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만큼 일이 쉬워졌지만, 그래도 담배일은 다른 어느 작물보다도 힘이들고 손도 많이 간다.
마을 분들의 한해 고생을 생각하며 부론에 나가 식혜 두 상자를 사 가지고 수매장을 찾았다.
한창 승학이네 담배를 바치고 있는 중이었다. 잎담배를 쌓아 둔 곳에서부터 수매를 받는 곳까지 동네 사람들이 쭉 늘어서 담배 부대 자루를 옆으로 옆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담배가 수매대에 올려지면 수매대 앞에 앉은 판정관이 담배의 빛깔과 질을 한눈에 판단하고 등급을 매긴다. 한 푸대 한 푸대에 담긴 한 해 동안의 땀어린 고생이 그 짧은 한순간에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최상급인 1등급이야 값도 좋고 마음도 좋지만 마음뿐, 4등급, 3등급도 적지 않다. 그 모든 것이 판정관의 판단에 달려 있다. 판정관이 판정을 하면 이내 자루의 무게와 등급이 컴퓨터에 입력이 되고, 입력된 내용이 딱지에 출력되어 나오면 담배 부대에 붙여 대기하고 있는 트럭에 옮겨 싣는다.
당연히 담배를 바치는 주인은 판정관 옆에 서서 한 부대 한 부대에 내려지는 판정을 떨리는 마음으로 듣게 된다. 그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도 긴장되고 떨린다.
밖에서 담배를 옮기는 일을 하는 마을 사람들은 이따금씩 수매를 하는 천막 안을 기웃거리며 농을 걸곤 한다.
“어이, 왜 겨울 개구리가 됐나? 입이 꽉 달라붙었어.” 좋은 판정을 받을 때마다 “고맙습니다” 주인이 인사를 해야 판정관이 기분이 좋아져 더 좋은 판정을 해 줄텐데, 인사하는 소리가 안 들린다는 이야기다. 한 등급이라도 이웃이 더 잘 받기를 바라는 고마운 마음들이다.
잊지 않고 수매장을 찾은 목사를 마을 분들은 두고두고 고마워한다. 나 또한 그게 고맙다. 농촌에서 목돈을 만져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래야 그동안 미뤄뒀던 일들로 이렇게 저렇게 돈을 나누면 금방 없어질 돈이지만 그래도 그날 만큼은 마음 편하고 좋은 날이다.
주름지고 지친 이웃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이 모처럼 여유로웠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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