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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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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800.은총의 아침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이 없었다. 난생 처음 결혼식 주례를 맡아 경북 상주까지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타곤 첫차를 타더라도 시간 안에 도착할 자신이 없었다.
전날 저녁, 이웃마을 조귀농에 사는 한기종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만나 얘기를 나눌 때 언제라도 차가 필요하면 연락달라는 얘기를 들었던 터였다.
다음날 이른 아침 한기종 씨가 트럭을 몰고 왔다. 충주로 가는 길, 차 안에서의 얘기는 자연스레 결혼얘기가 되었다. 31살에 건강하고 성실한 청년 한기종씨,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농촌총각 이 그러하듯 아직 장가를 못 갔다.
“선을 몇번 보긴 봤어요. 그런데 그 때마다 자존심 이상하더라고요. 농촌의 산다고 깔보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요. 집에 불 뭘로 때냐? 연탄이냐 나무냐? 빚이 얼마냐? 꿩을 키운다는데 몇 마리나 키우냐? 벌이는 얼마냐? 변명하기도 싫고 장가가려고 머리 숙이고 싶지도 않고...”
신앙생활도 잘하고 상실하기도 한 청년. 그런데도 그는 농촌에서 산다는 이유로 번번이 마음 이 상해야 했다.
한적한 산길을 따라 충주가 멀지 않았다. 상주까지 계속 가자는 그의 제안을 고마움으로 물리고 충주터미널에서 내렸다. 고맙다 인사를 하며 준비한 봉투를 전했다. 못한 아침도 그렇고 충주까지 기름값도 그렇고, 그걸 어찌 액수로 따지랴만 성의껏 준비한 봉투였다.
그러나 그는 정색을 하며 받지 않았다. 괜히 하는 거절투가 아니었다. 그런 고집은 내게도 있어 다시 전했지만 그의 말을 듣고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저 같은 사람도 차를 끌고 다니는데 목사님 같은 분들이 목회를 안 하면 어디 저보다 못 하겠어요 앞으로도 필요하면 말씀만 하세요. 그런 봉사는 언제라도 하겠습니다.”
고마운 사람, 넉넉하고 건강한 마음. 첫 결혼식 주례를 맡은 아침, 한기종씨는 그 아침을 빛나는 기쁨으로 열어주었다.(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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