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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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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460.어떤 고마움
작실 반장 일을 보고 있는 병철씨가 얼마 전 딸을 낳았습니다. 첫 아들 규성이에 이어 둘째로는 딸을 낳았습니다.
아기 낳기 전날까지 하루 종일 고추모를 같이 심었던 부인이 다음날 새벽 배가 아프다 하여 차를 불러 원주 시내로 나갔는데, 나가자 마자 별 어려움 없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병원을 다녀오는 병철씨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둘째 아기를 건강하게 잘 낳은 것도 그렇고, 첫째가 아들이라 은근히 딸을 기대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낭낭한 아기울음 동네에 퍼지게 되었고, 모처럼 흰 기저귀 널리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끝정자로 내려가다가 버스정류장께를 지날 때 보니 개울 득 저만치 누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병철씨였습니다. 못자리를 한 논을 보러 나왔다가 봄볕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올 겨울 병철씨는 논을 새로 샀습니다. 못자리를 한 논은 물론 그 논에 연이어 붙은 제법 큰 논다랭이 서너개가 이번에 새로 산 논이었습니다. 병철씨가 손으로 그 논들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새로 낳은 아기 이름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할머니와 엄마 아빠가 의논해서 짓는 게 좋겠다며 일어나 끝정자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문득 병철씨가 고마웠습니다. 젊은 사람 떠날 대로 떠난 농촌에 남아 굿굿하게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위해 반장 일을 보는 거야 새삼스러울 게 없는 변함없는 든든함입니다.
새삼스레 병철씨가 고마웠던 건 아기 낳고 농사지을 땅 늘리는 그런 단순한 삶의 모습이 단순함을 넘어 무언의 메시지로 가다왔기 때문입니다. 젊은 부부가 아기를 낳는 거야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이지만 왠지 그런 모습이 버려진 땅에 씨 뿌리는, 버릴 수 없는 땅을 지키려는 땅에 대한 농부의 비장한 다짐처럼 여겨졌습니다. 뿌리 뽑히듯 사람들 떠나간 황량한 땅위에 더욱 깊게 뿌리 내려서려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농사지을 땅을 늘린 모습 또한 그랬습니다.
바벨론 군대에 포위된 절박한 상황 속, 갇혀 있으면서도 사람을 시켜 땅을 샀던 예레미야의 모습이 병철씨 모습과 겹쳤습니다. 위급한 상황, 다른 사람이 그러하듯 피난 갈 궁리를 하는 것이 옳았을텐데 땅을 사다니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만 그건 하나님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일에 대한 희망의 모습이었습니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묵는 땅이 늘고, 어떻게든 전답을 정리해 도시생활의 밑천을 삼으려는 뭇 젊음을 두고 그런 흐름을 역행하듯 논을 사들인 병철씨.
그저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갈 뿐, 이런 얘길 들으면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내겐, 적어도 둘째 딸을 낳고 땅을 사들인 병철씨 모습은 결코 평범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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