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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8. 천형(天形)처럼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45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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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58. 천형(天形)처럼

 

차를 수리할 곳이 있어 카센타에 들렸더니 마침 아는 청년이 와 있었다. 이웃동네인 조귀농에 사는 청년이었다. 

마침 때가 점심때, 같이 점심을 하기로 했다. 조귀농은 같은 단강리에 속했으면서도 매래쪽 산모퉁이를 돌아 뚝 떨어져 있고 오히려 다리하나 사이로 도(道)가 갈려 충청북도가 시작되는 덕은리에 가까워 덕은리와 한 동네처럼 지내는 마을이다. 

교파는 다르지만 덕은리에도 교회가 있어 자연 조귀농 마을은 덕은리 교회의 선교구역이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조귀농은 내게 일부러라도 자주 찾지 않는 동네였다. 

작은 마을에서 이 교회 저 교회 나뉘어 다니는 것이 좋을 것이 없겠다 여겨졌다. 

모처럼 편하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된 셈이었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결혼을 못한 그 가느다란 기대가 남아 있긴 하지만 체념이 더 커 보였다. 

요즘 여자들이 누가 사골로 집을 오겠느냐는 얘기였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젊은이가 단지 농촌에 살며 농사를 짓는다는 이유로 결혼을 못한다면 농촌은 얼마나 저주받은 땅인가. 

“뮐 좀 해볼려구 해두 안의 내조가 읍으니까 어렵네유” 

일을 하려면 최소한 일꾼들 점심이며 새참을 챙겨줄 사람이 필요한데 형편이 그렇질 못하니 새로운 일 벌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골에 와 같이 땀 흘려 땀을 일구며 순박한 한 남자를 지아비로 삼아, 사랑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는 일, 해볼만 한 그 일이 왜 지금 이 세대에는 천형(天形)처럼 여겨지는 것일까.

“컴퓨터 한대 살려믄 올마나 가지유?” 

이런저런 얘기끝, 컴퓨터에 대해물었다.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데 주변에 컴퓨터 가진 이도 없고 그러다 보니 배울 엄두가 안 난다는 얘기였다. 놀이방에 컴퓨터 서너대를 갖추고 마을에 있는 학생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연스레 컴퓨터를 접할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보자 했던 일, 

마음은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한 그 일이 다시 한번 마음에 걸렸다. 컴퓨터 장만도 장만이지만 손가락 두 개로 겨우 원고나 쓸 줄 아는 내 수준으로서는 누군가를 체계있게 가르친다는 것이 엄두를 못낼 일, 그래도 어떻게든 그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죄 정리하구 도시루 나가자니 그렇구, 그렇다구 남자니 그것두 그러네유.” 

그 청년은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그렇게 밝혔다. ‘어정쩡함 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그는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고, 젊은 농사꾼인 그의 삶이 대책 없이 막막한 건 이 땅의 막막함의 두께가 사소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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