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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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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89. 할아버지의 예언
“언젠가는 서울을 두 시간이면 간다구, 그런 때가 온다구, 옛날 우리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자주 말씀하시곤 했어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심방을 가는 길, 이종태 권사님과 이음천 속장님이 동행하였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에 맞춰 끊은 것이 마침 우등고속. 두 분은 나란히 앉아 십년만에 고속버스를 타보는데 그동안 차가 이렇게 좋아졌냐며 굳이 들뜬 마음 감추지 않다가, 권사님이 어릴 적 들었던 할아버지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몇 날 며칠을 걸려 가야 하는 그 먼 서울 거리를 두 시간이믄 갈 수 있다니, 그때로선 꿈같은 얘기였지유. 그런데 지금은 시간반이믄 가 닿으니 신기한 일이에유.”
“그래 그 할아버진 어떻게 해서 훗날 일을 알았을까요?” 속장님이 신기해 묻자
“글세, 우리두 그땐 믿을 수가 읍섰지. 그래 물으믄 다 책에 나와 있다구 할아버진 그러셨어. 할아버진 책을 많이 읽는 분이었거든.”
중앙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 또한 나란히 앉아 재미있게 얘기를 듣는데 권사님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구, 이론 말씀두 하셨어. 앞으론 길이 이리루두 뚫리고 저리루두 뚫리는, 사방으로 길이 뚫리는 시대가 오는데, 그때가 바로 세상의 종말이라구.”
사방으로 길이 뚫리면 세상의 종말이라니, 여기저기 길이 뚫리고 있는 요즘이니 그럼 종말이 다가왔다는 얘기인가, 길가 뚫리는 것과 세상의 종말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재미 반 호기심 반으로 생각을 이어갔다.
사실 서울까지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는 얘기만 아니었다면 길 뚫리는 것과 종말과의 관계에 대한 얘기쯤은 한 노인네의 주착없는 소리로 여기고 말았을지 모른다.
서울까지의 시간을 신통하게 내다봤던 열린눈을 가진 노인이 한 말이라는 게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이어가게 했지 싶다.
피곤하기도 했고, 심방 할 내용도 생각할 겸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는데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다.
사방팔방으로 길이 뚫리면 온 나라에 자동차 천지. 그러면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로 나무가 죽고 들이 죽고 산이 죽고 물이 죽고 짐승이 죽고 그러다 사람도 살 수 없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닌지.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다.
4차선으로 확장되어 막힘없이 달리는 원주발 서울행 고속버스, 생각이 거기에 그렇게 미치자 시원하게 달리는 차들이 시원하지만은 않았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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