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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614. 어울림
산에 붉은 빛이 감돈다. 그리움을 들켜버린 처녀의 부끄러움처럼, 나이를 잊으려는 중년 여인의 짙은 립스틱 처럼 곳곳 붉은 진달래가 한창이다.
병아리가 피를 흘리면 저 빛깔이 될까, 노란 개나리가 또한 한창이다. 투명하고 선명한 빛깔. 길가와 집 둘레 아무렇지도 않게 피어나선 은근 히 눈을 부시게 한다.
산속 진달래와 산 아래 개나리가 조심스레 어울릴 때 풀과 나무들이 순한 연초록 잎새로 그들을 축복한다. 더 복되게 만나라고 슬며시들 물러서 둘을 가깝게 한다.
바람도 저녁 햇살도 한몫 거든다.
기다란 가지끝 아직 작은 속삭임을 산자락으로 크게 전하고, 산그림자 사이 찬란한 역광으로 진달래 잎새 속 불을 밝혀 속마음 무엇인지 은근히 비춰낸다.
이 큰 어울림.
하나만 없었대도 소용이 없을 꽉 찬 어울림,
하나님이 얼마나 세심한 분인지를 봄날, 사방천지 꽃과 나무들이 함성처럼 가르치고 있다.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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