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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6.쓰러진 벼
이때쯤 필요한 건 릴케의 시(詩)대로 “마지막 과실들을 익히고 짙은 포도주 속에 마지막 단맛 스미게 할 남국의 햇볕”일 텐데, 그 햇볕은 잿빛 구름으로 겹겹이 막히고, 많은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를 따라 바람도 불어대어 논마다 벼들이 쓰러졌다. 융단 깔 듯, 추수를 앞둔 싯누런 황금빛 벌판이 곳곳에 이 빠진 듯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는 손길이 바쁘다.
쓰러진 벼끼리 한데 묶어 일으켜 세우는, 잠시 여유로 들판 바라지 못하고 또다시 일손 들여야 하는 피곤한 손길들.
어디 쓰러진 벼 뿐이랴.
일으켜 세워야 할 것, 벼처럼 쓰러진 마음들인데.
쓰러진 마음들끼리 한데 묶어 한데 일어나야 하는데.(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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