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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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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23. 새로운 길을 걷는 즐거움
군부대를 방문하기로 했다. 홍천에서 군목으로 일하고 있는 후배 손인화 목사가 자기네 부대에 와서 신앙강연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각종 사고도 많고, 군인으로서 가져야 할 가치관도 많이 흩어져 있다며 이야기를 부탁해왔다.
신앙강연을 앞두고 교우들과 의논을 했다. 이왕 가는 것 군인들을 위문하면 어떨까, 우리가 따로 군부대 위문을 못 가는데 목사 혼자 가느니 이번 기회에 교우들과 같이 가 위문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 얘기를 꺼냈다.
마침 우리가 가기로 한 교회는 우리가 올해초부터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이기도 했다. 새로 오신 허 권사님이 매월 선교헌금을 드리시는데 그 선교헌금을 군 선교를 위해 보내고 있는 터였다.
절편과 백설기로 떡 세 말을 했다. 다 좋다고 한 교우들이었지만 막상 함께 갈 교우들은 적었다. 고추 따는 일에 정신들이 없을 때였다.
교우들의 형편을 잘 아는 최영남, 박상률, 김환배 성도가 기꺼이 동행을 했다. 원주와 문막에서 예배를 드리러 오는 분들인데 그래도시간 내기가 편한 분들이었다.
아내와 규민이 규영이도 동행을 하여 가족 같은 사람들이 군부대를 찾았다. 허름한 막사를 개조하여 만든 예배당에 군인들이 모였고, 예배당 안은 군인들의 땀 밴 냄새로 가득했다.
흔히들 군 선교를 두고 ‘황금어장’이라 한다. 나라에 부름받은 젊은이들 주님께로 인도할 젊은이들이 무궁무진 많다는 뜻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장이 황금어장이면 무엇하겠는가. 관심이 없다면. 좀 더 구체적인 관심과 자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반은 졸고, 반은 경청하며 강연이 끝났다. 조는 것도 은혜지, 모처럼 교회에서라도 쉬니 얼마나 좋을까 편하게 받아들였다.
강연을 마치고 홍천 읍내로 나와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를 마쳤을 때 최영남 성도가 오후에 시간이 괜찮냐고 물었다. 다른 일 없다고 하자 그러면 횡성 쪽으로 가지 말고 ‘비행기재’로 해서 돌아가자고 했다.
비행기재라니? 알고 보니 최영남 성도와 박 상율 성도가 이름도 없는 -원래 이름이 없었을라구, 잃어버린 것이겠지- 고개에 어울리 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었다. 홍천에서 양평쪽으로 가다가 좌회전하여 얼마쯤 오다 오른쪽으로 난 샛길로 접어들었다. 차가 다닐 것같지 않은 비포장길이었다. 길은 좁고도 험했다.
여름 장마 때문이었는지 곳곳에 길이 험하게 패여 있기도 했다. 그 길을 위해 위태하게 오르는데 경사도 만만치 않고 길옆 나무와 덤불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저 아래가 여간 까마득하지가 않았다.
마침내 차가 정상에 섰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시원한 바람을 쐬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길을 어떻게 알았어요?” 궁금해 물었더니 “우린 이런 길만 골라서 다녀요. 어디가다 모르는 길이 나오면 아무리 험해 보여도 꼭 그리로 가보죠.”
모르는 길, 낯선 길 포장된 길보다는 험한 길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들, 그런 마음도 쉽지 않겠다 싶으며 왠지 태도가 좋아 보였다.
“지금도 사실은 구석구석 때묻지 않은 곳이 많아요.” 내려오는 길, 또다시 곁길인 임도로 들어선 두 사람은 꼬불탕 꼬불탕 험한 길을 내려오다 한쪽 옆으로 차를 세웠다. 잠깐 쉬었다 가자 했다.
물소리를 따라 계곡을 잠시 오르니 그야말로 절경이 펼쳐져 있다. 규모는 작지만 맑은 물이 바위를 타고 미끄럼을 타듯 한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가려진듯 감춰진 듯 있는 그 맑고 깨끗한 계곡물, 잠시 다람쥐 한 마리가 자리를 비켜준 틈을 타 발을 담그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새로운 길을 걷는 즐거움은 늘 그렇게 새로울 것일텐데.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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