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1285. 농사 짓기가 겁이 나네유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7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

□한희철1285. 농사 짓기가 겁이 나네유

 

올핸 처음 당근 가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봄이 되어 밭을 갈고 씨를 뿌렸는데 시간이 지나도 싹이 나질 않았다. 가물대로 가문 땅, 다시 갈고 다시 심고 두 번 세 번 같은 일을 해야 했다. 

고생과 걱정 끝에 고마운 싹이 났고, 고마운운 마음으로 정성으로 키웠다. 뜨거운 볕아래 쪼그리고 앉아 김도 서너 번 맸고 쑥쑥 잘 크라고 비료도 몇차례 껸졌다. 싹이 늦게 나긴 했지만 그런대로 당근은 잘 자라 평년작은 되었다. 강가 그 넓은 밭들이 당근잎으로 초록빛 물결로 아름다웠다.

올핸 얼마나 받을까, 누구에게 팔까, 돈 받으면 급하게 가릴 것이 이것 저것 또 무엇이 있지, 모두들 마음이 그랬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때가 되었는데도 아무도 당근을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예년 같으면 벌써 값을 흥정하고 이 밭 내게 팔으라 선금도 오갔을텐데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다니.

그래도 설마 - 하여 기다렸는데 설마는 결국 설마로 끝나고 말았다. 당근은 하나 둘 썩어가기 시작했고 결국은 길아 엎을 수밖에 없었다.

말이 쉬 안 나오는 얘기지만 별수가 없었다.두 번 세 번 뿌린 씨 값만 해도 만만치 않고 비료값, 품값, 게다가 가을이면 물어야 할 도지······ 

무심하게 밭을 갈아 엎어야 했다. 고생으로 갈 키운 자식같은 당근들을 도리없이 갈다 엎어야 했다. 뻘겋게 드러난 당근들, 정말 밭이 뻘겋게 피를 흘렸고, 밭에 땀을 쏟은 이들도 피눈물을 흘렸다.

그 속에 주일이 되었고 아침 열시, 교우들은 모였다. 고만 와도 좋을 비는 이틀 밤낮을 쉬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가라앉은 마음, 젖은 마음 위로 내리는 비는 찬비였다. 

설교 시간, 말문이 쉽게 트이지를 않았다. 

고만고만 앉아 있는 교우들, 앞자리의 조숙원성도, 이서흠성도. 허석분 할머니, 이필로 속장, 지금순집사, 김을순집사, 모두들 당근을 갈아 엎은 아들이다. 남의 땅 빌린 것까지 이천육백평을 고스란히 갈아엎은 이필로 속장,

조숭원 성도는 1800평, 허석분 할머니는 아픔몸을 참아가며 고생에 고생을 했는데, 게다가 여전히 내리는 비는당근 갈아엎고 심은 가을 무씨마저 지워내고 있을 터이니...

“정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말 그랬다. 그래도 주일이라고 예배 드리러 온 교우들의 모습은 내내는 눈물겨웠고, 그 지경이 되도록 어디 판로를 뚫지 못한 내 무능력은 죄스러웠다.

제단에 서서 마음이 무너질 때, “괜찮아유, 목사님. 이럴때두 있구, 지럴 때두 있는거지유.”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조숙원 성도였다.

믿기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된, 당근밭에 들어간 돈만 백만원이 넘는다는 그였다. 겉사람 (육신이라 해도 좋고 삶의 조건 혹은 환경이라 해도 좋겠다)은 후패해도(낡아가도, 무너져도) 속사람이 새롭다.(고후4:16)는 말씀을 소개하며 위로를 권했다. 

예배를 마치고 작실로 올라가는 길, 조숙원 성도가 속내를 털어 놓는다.

“일이 이르케 되니 증말 힘이 읍서유. 너무 실망스럽구유. 갈수룩 일이 이르케 되는 게 아닌가 싶은 게, 농사 짓기가 겁이 나네유.”

(얘기마을1995)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0 한희철 31.오누이의 새벽기도 한희철 2002-01-02 4408
149 한희철 30.졸업식 한희철 2002-01-02 4370
148 한희철 29.한결같은 살 한희철 2002-01-02 4345
147 한희철 28. 집사님의 떠남 한희철 2002-01-02 4441
146 한희철 27.농민 선교 대회 한희철 2002-01-02 4364
145 한희철 26.아니라 하십시오 한희철 2002-01-02 4408
144 한희철 25.겨울 강을 지나 한희철 2002-01-02 4428
143 한희철 24. 광철씨 한희철 2002-01-02 4384
142 한희철 23.목발 한희철 2002-01-02 4384
141 한희철 22. 이사 한희철 2002-01-02 4426
140 한희철 21.호사다마 한희철 2002-01-02 4380
139 한희철 20. 할 말 한희철 2002-01-02 4408
138 한희철 19. 개미밥 한희철 2002-01-02 4394
137 한희철 18. 시골수련회 한희철 2002-01-02 4449
136 한희철 17. 농담 한희철 2002-01-02 4428
135 한희철 16. 교패 한희철 2002-01-02 4467
134 한희철 15.어떤 사회자 한희철 2002-01-02 4430
133 한희철 14.낫기만 해라 한희철 2002-01-02 4439
132 한희철 13.소주병 꽃꽂이 한희철 2002-01-02 4442
131 한희철 12.담배 먹고 꼴베라 한희철 2002-01-02 4506
130 한희철 11.단비 한희철 2002-01-02 4493
129 한희철 10.엄마 소 한희철 2002-01-02 4472
128 한희철 9.배웅 한희철 2002-01-02 4436
127 한희철 8. 어떤 부활절 한희철 2002-01-02 4482
126 한희철 7.설사 한희철 2002-01-02 4405
125 한희철 6.반장님 생일 한희철 2002-01-02 4458
124 한희철 5.거친 들에 씨뿌린 자 한희철 2002-01-02 4551
123 한희철 4. 동생들아, 용서하렴 한희철 2002-01-02 4479
122 한희철 3.조명 한희철 2002-01-02 4462
121 한희철 2.첫 예배 한희철 2002-01-02 4521
120 한희철 1.서툰 시작 한희철 2002-01-02 4497
119 한희철 얘기마을 - 한희철 목사님 file 한희철 2002-01-02 16333
118 김남준 진정한 권위 김남준 2001-12-30 1671
117 김남준 교회의 권세 김남준 2001-12-30 1948
116 김남준 하나님의 실재 김남준 2001-12-30 1770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