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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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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16. 먼저 포기하지 맙시다
아침시간, 교우 몇 분과 함께 이문옥 아주머니네를 찾았다. 섬뜰 윗담말 저수지 아래 한쪽 편에 선 아주머니네 집은 조용했다.
아주머니는 혼자 여전히 괴로운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뼈만 남은 모습도 그랬고 바싹 타 들어간 입술도 아주머니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 것인지를 한눈에 말해주고 있었다.
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처럼 건장했던 아주머니를 저렇게 야위게 만들어 허물어뜨리는 것인지. 일밖에 모르셨던 분, 어느 날 심상치 않은 고통이 찾아오고 그때 그때 먹는 약으로 고통이 다스려지지 않는 걸 본인이야 알고 있었지만 사방 밀린게 일, 내색을 않고 버티다가 결국은 병을 돌이킬 수 없게 키우고 말았다.
담배 모나 심고 병원 가봐야지 했다가 고추모 심고, 고추모 끝나면 가봐야지 하다가 모 심고, 그러다 담배 따고... 점점 깊어지는 병을 스스로는 알면서도 병원 한번 못가고 담배 잎 조리하고, 수매하고…. 미루고 미루다 마침내 병원에 실려가니 이미 치명적, 손을 대기엔 너무 늦은 때였다.
그런걸 매일 다량의 진통제로나 다스려 왔으니.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유.” 막내 미영이가 대학에 들어갔으니 이젠 고생 면할 때도 되었는데 몹쓸 병마로 맥없이 쓰러지다니, 겨우 토해낸 아주머니의 탄식은 듣기에도 너무 아프고 안타까웠다.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 했지만 기도가 쉽지 않았다. 심방예배를 마치고 잠시 얘기 나누다 먼저 빠져 나왔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은희에게로 가야했다. 전날 밤 은희 일 걱정하며 전화를 준 병원의 인턴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던 터였다.
은희는 아직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어서 나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의 생각과 말은 뚝뚝 어이없이 끊기고 있었다.
첫번 입원했을 때만 해도 한달 보름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두달이 지나는 데도 별 진전이 없다. 여섯 단계를 거쳐야 퇴원이 가능한데, 은희는 아직도 두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언제까지 치료를 받이야 하는건지, 서둘러 퇴원을 시켜 어디 요양원으로 보내려 하는 은희 큰집 식구들을 언제까지 어떻게 설득을 시켜야 하는건지. 그보단 언제가 됐든 은희가 퇴원을 했을 때 은희는 어디서 누구와 살아야 하는건지, 모든 게 막막했다.
은희와 마주 앉아 차마 은희 앞에 그럴 순 없었지만 자꾸 눈물겨웠다. 아무런 대책이 보이지 않는 기가막힌 막연함. 그 길을 걸어가야 할 은희의 평생의 삶, 이 얼마나 중요한 기로인가.
돌아오며 생각하니 이문옥씨 -사실 이문옥씨는 은희의 이모다.- 와 은희가 겪는 아픔은 단지 한 개인의 아픔만은 아니었다. 이 땅 농촌이 겪고 있는 모두의 아픔이었다. 이 땅이 그렇게 깊이 병이 든 것이다.
‘표기하지 말자.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지금 보이는 길은 없지만 하늘이 길을 여시겠지. 무어라 대답하시겠지.’
나도 몰래 그런 다짐이 일었다. 교회로 돌아왔을 때 마침 교회 청소를 하러 온 교우가 은희 안부를 묻더니 안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목사님. 이젠 그만 손 떼세유, 안타까워 그러시는 건 잘 알지만 더 어뜩하겠어유, 그만큼 하신것두 큰일 하신거니 이젠 그만 내버려 두세유.”
교우의 마음을 나도 잘 안다. 때때로 그런 마음 내게도 있고 그때마다 나를 약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만 손 떼라’한 교우 얘기는 오늘 농촌의 어려움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얘기였다.
그날 저녁 수요예배를 드리며 교우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은 일을 우리가 먼저 포기하지 맙시다.” 그건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였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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