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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743.봄(2)
아랫작실 양짓말
세월을 잊은 커다란 느리나무 아래
이씨 문중 낡은 사당이 있고
사당으로 들어서는 왼쪽 편
살던 사람 떠나 쉽게 허물어진 마당 공터에
비닐 하우스가 섰다.
하우스 안에선 고추모들이 자란다.
막대 끝에 매단 둥근 바구니를 터뜨리려
팥찌를 던져대는 운동회날 아이들처럼
고만 고만한 고추모들이 아우성을 친다.
저녁녘 병철씨가 비닐을 덮는다.
아직은 쌀쌀한 밤기운
행여 밤새 고추모가 얼까 한겨 비닐을 덮고
그위에 보온 덮개를 덮고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다시 한번 넓다란 보온 덮개를 덮는다.
이불 차 던지고 자는 어린자식
꼭 꼭 덮어주는 애비 손길처럼
고추모를 덮고 덮는 병철씨
나무 등걸처럼 거친 병철씨 손이 문득 따뜻하다.
고추모들은 또 한 밤을 잘 잘 것이다.
봄이다.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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