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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퇴박맞은 솥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64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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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636.퇴박맞은 솥


새해맞이 심방길, 윗작실 이한주 할아버지네를 들렸습니다.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버스정류장에서도 얼마큼 더 올라가는, 윗작실 맨 꼭대기 집입니다. 이하근 집사님 내외가 떠난 뒤론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살고 있습니다.
썰렁한 마당이 꼭 빈 집 같습니다. 전에 들렸을 때만해도 사랑방에서 지내셨는데 심방길 들려보니 안방을 쓰고 있었습니다.
마루로 올라 설 때 기둥 옆 나무막대기 두 개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입니다. 걸음걸이가 심하게 불편한 할아버지는 아예 지팡이를 두 개 짚고 다닙니다. 한손에 한개 씩 짚고 다니는 것입니다.
방안에 걸려있는 액자 속에 떨어져 사는 손주들 사진이 가득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대문을 나설때였습니다. 대문 곁 사랑방을 지나던 김영옥 속장님이 푹 한숨을 수며 한마디 말을 뱉았습니다.
“에구. 이렇게 좋은 솥이 퇴박을 맞아 가지구……”
그러고보니 사랑방 아궁이에 걸려있는 가마솥이 보통이 아닙니다. 커다란 무쇠 가마솥, 쇠죽을 쑤던 가마솥에선 아직도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거처를 안방으로 옮긴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 동안은 쇠죽을 쑤느라 사랑방에서 지냈던 것인데 힘에 부쳐 소를 판 뒤에는 더 이상은 쇠죽을 쓸 일이 없어졌고, 그나마 연탄을 때도 되는 안방으로 방을 옮긴 것입니다.
퇴박을 맞아 버림당한 것이 어디 이한주 할아버지네 무쇠 가마솥 뿐이겠습니까. 그 좋고 소중한 것들이 온통 퇴박을 맞아가지고 ……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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