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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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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96.무너지는 고향
단강 아이들과 꿈 얘기를 했습니다.
동그렇게 둘러앉아 자기 꿈 얘기를 돌아가며 했습니다. 과학자가 되겠다는 아이도 있었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화가, 가수, 군인, 간호사 등 아이들은 차례대로 자기 꿈 얘기를 했습니다. 되고 싶은 게 많아서인지, 미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서인지 대답을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중 미희와 은숙이 얘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던 4학년 미희와 의사가 꿈이라고 대답했던 6학년 은숙이는 이어진 질문, 이 다음에 어른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조금 전 대답했던 꿈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미희는 밭에서 담배나 고추를 따고 있을 것이라고 했고, 의사가 꿈이었던 은숙이는 어느 공장에 취직해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애써 가진 꿈이 미리 그려보는 자신의 모습 앞에 어이없이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이 다음에 커서도 계속 단강에 살고 싶은 사람을 물었을 때 아무도 손 드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승혜는 심심해서 단강이 싫다 했고, 연경이는 친구가 없어서, 경림이는 죽도록 일만 하는 것이 싫다고 했습니다. 일만 하는 부모님이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조금 큰 녀석들은 도시로 나가서 살다가 가끔씩 자식들 데리고 들리고나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있어 가끔씩 찾는 너희를 맞아 줄 것 같냐는 말에는 아무도 대답을 못했습니다.
얼마 전, 종숙이과 종설이 두 남매가 원주 시내로 전학을 갔습니다. 근근한 살림, 그런데도 종숙이 부모님은 두 남매를 원주로 내보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이제 4학년과 6학년, 드는 걱정 때문에 자식들 늘 눈에 밟힐텐데도 안 그런 척 내보냈습니다. 어떻게든 자식만은 공부를 시켜 지지리 고생뿐인 농사를 물리지 않겠다는 안스러운 몸부림이었습니다.
부끄러움 많은 단강 아이들 중 유독 부끄럼 잘 타는 종숙이와 종설이, 녀석들이 원주로 나갔다는 얘기를 들으며 가슴 한 구석 힘없이 헐리는 소리와 함께 부끄러움 많은 녀석들이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앞에 서서 인사나 제대로 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뿌리가 깊고 튼튼하다면야 왜 걱정을 하겠습니까만 오늘의 농촌은 아이들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고향’이라는 말도 아이들을 품지 못합니다.
‘정책’이라는 쉬운 생각 하나에 우리의 고향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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