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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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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81.첫 열매의 기억
어릴 적, 내게 외경심을 심어 주었던 것 중의 하나가 첫 열매였다.
집 주위 널찍한 밭에는 여러 종류의 채소와 과일이 심겨져 있었다. 올망졸망 빨갛게 그 크기와 빛깔을 익혀가던 토마토, 세워준 싸릿대를 따라 미끈하게 자라던 오이 - 우리는 그것을 따 동네 공동 우물 속에 집어넣었다가 차가와지면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먹기도 했고 멱감으러 가서 목마를 때 먹기도 했다.- 하며,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파란 송이를 따먹던 포도, 가슴에 아아 들기도 벅찰 만큼 컸던 무와 배추들, 팽이처럼 생긴 배추꼬리의 그 맛, 때론 입술이 날카롭게 베이면서도 열심히 잘라 씹었던 옥수수대, 보송보송 하얗게 껍질이 갈라지도록 삶아 먹던 가자 고구마, 칼칼하게 혓바늘을 듣게 했던 가지, 언 땅이 녹을 즈음 뒤편 언덕에서 캐내던 돼지감자, 그밖에도 고추, 아욱, 부추, 파, 마늘 등 오늘 시장에서 사 먹는 대부분의 것들을 그땐 텃밭에서 키워 먹었던 것이다.
그렇게 떠오르는 기억과 함께 생각나는 것은 첫 열매에 대한 어머니의 가르침이다. 어떤 채소나 과일이든 처음 딴 열매는 언제나 목사님께 먼저 드렸다. 그 심부름의 대부분은 우리들 몫이었다. 첫 열매라는 말의 뜻을 보자기에 싼 첫 열매를 들고 가며 배운 셈이다.
그때 첫 열매가 내게 가르쳐준 건 ‘구별’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게 내 것이 아니라는, 정성으로 구별해야 하는 게 있음을 그렇게 배운 것이다. 그건 어쩜 어머니가 하실 수도 있는 일을 우리에게 시킴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신앙의 한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농촌목회를 하며 때때로 가슴 찡한 일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첫 열매를 받을 때이다. 가끔씩 교우들은 첫 열매를 가지고 오신다.
봄나물부터 마늘쫑, 풋고추, 당근, 땅콩, 오이, 고추등 정성스레 가꾼 곡식들을 처음 따서 잘 키워주신 하나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담임목사인 내게 전하시는 것이다.
첫 열매를 받을 때면 어릴 적 그 기억이 확 되살아오며 온 몸에 감사한 마음이, 그리운 마음이 가득해지곤 한다.
-어머니
못나고 부족한 아들이 목회랍시고 떠나와 어릴 적 어머니가 드리던 첫 열매를 받습니다. 당신께서 드리신 정성, 제가 받는 것이겠지요.
더러는 까먹고 더러는 알면서도 못하지만 그래도 당신께서 가르쳐 주신 첫 열매 드리는 마음, 제 삶 속에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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