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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9. 노인대학 이야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429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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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49. 노인대학 이야기 

 

춘천중앙감리교회에서 열리는 노인대학에 다녀왔다. 일 년에 두어 번,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이야기를 부탁받아 다녀오고 있다. 

사십여명의 학생들이 모이는데 모두들 열심이시다. 나이에 상관없이 여전히 학생들이시다. 

이번에는 강의 대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기구한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신지라 가슴에 묻은 이야기가 많을 듯 싶어 지난번 시간엔 ‘자서전을 쓰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직접 쓰든, 녹음을 하든, 손주들에게 대필을 시키든 그냥 가슴에 묻기엔 아까운 이야기들을 남겨보시라 했었다. 

이번엔 그 이야기들을 직접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홍영녀 할머니가 쓰신 책 제목이기도 하다)라는 제목으로 다섯가지 이야기 거리를 정했다. 

-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 살아오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일은? 

- 기억하고 있는 재미난 말이나 이야기가 있다면? 

- 자녀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순서를 따라 이야기를 나눴다. 자칫 한 사람의 이야기가 길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학생들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지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해 주었다. 한 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참 푸근하고 정겨운 시간이었다. 

 

‘가장 마음 아팠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여기저기 눈물 닦는 분들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아픈 일들이 떠올랐지 싶다. 한 할머니가 다소곳이 손을 들었다. 그러면서 “6,25때 남편을 따라가지 못한 게 가장 슬퍼요” 하신다. 무슨 말씀이냐 여쭙자 할머니 이야기가 이어졌다. 

“난리가 나자 남편이 저보고 피난가자 했어요. 그런데 남편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집에 늙으신 시어머니가 계셨는데 피난 갈 형편이 못됐어요. 시어머니를 혼자 내버려 두고 가는 건 죄짓는 일 같아 못 갔어요. 이틀 뒤 남편이 돌아와 같이 가자 다시 말했지만 그래도 못 갔어요. 시어머니를 혼자 버려둘 수가 없었어요. 결국 남편 혼자서 피난을 갔지요”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눈에선 계속 눈물이 흘렀고 할머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물에 다 젖은 목소리였다. 결국 남편은 혼자 피난을 떠났고, 그렇게 떠난 남편은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단다. 그때 할머니 나이 스물셋, 어린 딸이 하나 있었다. 

조심스레 할머니께 나이를 여쭸고 그때 나이 “스물 셋”이었다 할 때 이야기를 듣는 나도 가슴에 금이 가는 듯했고, 그 금은 얼마나 아리고도 아프던지. 스물셋의 나이에 늙은 시어머니를 떠날 수 없어 같이 가자 하는 남편을 따라나서지 않았다니, 아픈 가슴을 따라 두 눈이 젖어왔다. 

눈물로 이야기를 듣던 한 할머니가 그 뒷소식을 물었고 할머니의 대답이 어졌다. 

“구년간 시어머니 모시고 딸 키우며 살았어요. 십년이 다 되도록 피난간 아들로부터 소식이 없자 시어머니가 나서 재혼을 시켰어요. 그래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지금도 그때 떠난 남편을 생각하면 죄지은 마음이에요.” 할머니의 음성은 맑았지만 정말 할머니는 내내 눈물을 닦으며 이야기를 하셨다. 

왜 떠난 남편에게 지금까지 죄스럽다는 것일까, 혼자 떠난 남편이 원망스럽지는 않았을까. 할머니 마음 아프게 해 드리는 것 같아 조심스럽긴 했지만 여쭤보았다. 

할머니 대답은 간단했다. “수절하지 못해서요. 하지만 어머니 마음을 거역할 수가 없었어요” 

누가 그 할머니를 탓할까. 그토록 눈물겨운 마음이면서도 할머니는 끝까지 수절하지 못했다며 자신을 책하고 있으니 다시 한번 그 마음이 눈물겨웠다. 저 아픈 마음을 가지고 한평생을 살아오신 할머니, 한동안 모두가 말이 없었다. 눈물 닦고 생각을 가다듬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릴 적 들었던 재미난 말이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참으로 귀한 얘기들이 세대와의 단절로 끊겨가고 있는 점이 늘 안타까운 터였다. 고향이 개성인 한 할머니가 어릴적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주었는데, 얘기가 기가 막혔다. 

“옛날, 한 마을에 착한 농부가 살았는데, 어느날 꿈을 꿨어. 천장에서 돈이 막 쏟아지는 꿈이었지.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쓰는데 옆집 영감이 있어 인사를 하곤 꿈얘기를 했지, 그런데 옆집 영감은 아주 욕심장이였어, 꿈얘기 를 들은 영감은 농부를 따라 다니기로 했어.꿈으로 보아 선 횡재를 할 것 같았거든. 농부가 소를 몰고 나가 밭을 가는데, 아 밭 중간쯤에서 쟁기가 나가질 않는 거야. 웬일인가 살펴봤더니 쟁기날이 웬 항아리 뚜껑에 걸려 있는거야,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돈이 가득 들어있질 않겠어. 농부가 생각하기를 ‘어젯밤 꿈에는 돈이 천장에서 떨어졌는데 이것은 땅속에 묻혀있으니 내 것이 아니다’ 하며 도로 덮어 묻었어. 그리고는 밭을 갈았지. 농부가 밭을 다 갈고 간 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욕심쟁이 영감이 ‘옳다. 뭔가 보물을 본 모양이다. 농부가 혹 남이 볼까 밤중에 몰래캐 갈려고 도로 덮어 놓은 게 틀림 없어.’ 하며 농부가 묻어 놓은 항아리를 팠어. 항아리를 찾아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어찌 된 일이야, 항아리 속에 소똥개똥 말똥이 가득 들어 있는 게 아니겠어. 화가 잔뜩 난 영감은 항아리를 낑낑 메고선 농부네로 갔어. 그리고는 지붕위에 올라가 똥을 확 쏟아부었지. 농부가 자리에 누워서 보니 천장에서 뭐가 막 떨어지는데 보니 돈이잖아, ‘이건 어젯밤 꿈대로 천장에서 떨어지니 내 것이 틀림없구나’하며 돈을 가졌대.” 

이야길 듣고선 우린 얼마나 웃었는지. 얼마나 재밌고 얼마나 신나고 맛있던지 책에서는 본수 없었던, 누군가 한사람이 꾸며낸 이야기보단 옛부터 대대로 물려 내려오며 만들어진, 그야말로 민중의 얘기. 

눈물과 웃음이 어우러진 노인대학, 어느덧 시간반이 훌쩍 지나갔고 마치는 시간이었다. 아직 남은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창문 밖으로 환했다. 봄에 돋아나는 연초록 잎새도 아름답지만 곧 떨어질 나뭇잎도 아름다웠다. 때를 알고 자기 빛깔로 물든 잎새 잎새들, 순연한 삶의 이름다움!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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