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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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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22. 영혼의 집짓기
집을 짓기로 했다. 목사가 집을 짓다니, 웬 생뚱스러운 얘기냐 할지 몰라도 집을 한 채 짓기로 했다.
어느날 단강을 찾은 장인과 함께 바람을 쐴겸 작실 골짜기를 걸은 적이 있다. 그때 장인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한 목사만 좋다면 굳이 큰 교회 갈 생각 말고 단강에서 계속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나? 글도 쓰고 이따금 강의도 다녀오곤 하니 조용히 자기 공부하면 되잖아?”
장인의 얘기가 내심 반가웠던 건 그런 얘기 속에 담긴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졌다는 점에서였다.
사실 그동안은 이젠 그만 나올 때 안됐나, 그만큼 시골에 있었으면 도시로 나와 큰 목회를 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한번도 대놓고 그런 이야기 한 적은 없지만, 마음이 그러신 거야 느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단강이 좋으면 단강에서 계속 사는 것도 좋지 않냐니, 우리 삶에 대한 따뜻한 이해로, 격려로 와 닿았다.
얘기 끝에 장인은 어디 조용한 곳에 땅 구할 곳이 있으면 알아보라 하였다. 조용히 책도 보고 기도도 하고 글도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사실 그런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야 가슴 한켠 늘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어찌 원하는 것을 늘 이룰 수 있으랴. 아쉬움을 당연하게 여겨오던 터였다.
마침 윗작실 김진택씨네가 작실 안골 골짜기의 작은 밭을 팔려고 내놓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용도로는 잘 어울리지 싶은 그 땅을 사게 되었다.
삼백삼십평에 사백만원, 사백만원이란 돈이 사골 목회자에게 얼마나 큰 돈이라만 장인이 기꺼이 후원해 주었다.
처가의 살림이 넉넉한 것만은 아니어서 마음이 흔쾌하지만은 않았지만 고맙게 생각하기로 했다. ‘홍수가 났을 때일수록 맑은 물이 귀하다’던데 필요한 목회자 되라는 따뜻한 격려로 받아들였다.
땅은 그렇게 마련되었으니 집은 내가 지어야지, 생각을 그렇게 하고 집 짓는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집은 무엇보다 땀과 정(情)으로 짓는 것이다. 돈이 없기도 하거니와 집을 집답게 땀과 정으로 짓고 싶었다. 마을의 젊은이 병철씨와 왕근씨에게 의중을 털어놓았다. 왜 집을 지으려 하는지 그걸 설명하기가 제일 힘들었다. 소유욕은 아닌가, 내 자신에게부터 힘든 게 사실이었다.
‘무소유욕이다. 존재의 집, 영혼의 집을 짓는거다’ 스스로의 생각이 그렇게 정리되었을 때에야, 마음이 편해졌다.
불가에서는 선방이 있고 암자가 있고 구름집이 있어 일상으로부터 뚝 떨어져 깊은 명상에 빠져들곤 하는데. 우린 너무 일방적으로 일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우리의 뿌리가 허약해 보이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혼자 뚝 떨어져 홀로의 시간을 보낼 곳,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홀로 주님을 마주할 곳, 때론 실컷 울기도 하고 시간을 잊고 잠을 자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사실 우리들에게도 그런 자리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곳곳에 기도원이 없는 것은 아니나 혼자가 되기에는 아무래도 어색한 곳이 사실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병철씨와 왕근씨가 내 이야기를 편하게 받아 주었다.
그럼 짓자, 그런데 어떻게, 무엇으로?
흙집을 생각했다. 그리곤 고집했다.
지금은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의 옛집이기도 하거니와 흙만큼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로 돌리는 매체도 드물지 않은가 싶어서였다.
클 필요도 화려할 필요도 없는, 그저 비 안새고 안 무너질 정도의 집이면 족하니 서로의 힘을 모으면 가능할 거라는, 경제적인 면도 고려된 것이 사실이다.
집에 대해 생각한 지 벌써 대여섯달이 지나간다. 그런데 아직 시작도 못 했다. 터도 닦아야 하고 길도 내야 하고, 생각으로 쉽게 쉽게 될 것 같았던 일이 막상 현실로는 쉽지가 않았다. 흙벽돌 찍는 일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일 철 나서고 나니 병철씨도 왕근씨도 시간 따로 내기가 어려웠다.
집을 땀과 정으로만 짓겠다는 것은 분명 무리였고, 한계가 있는 일이었다. 잎이 모두 지고 난 뒤 측량을 할 수 있다 하여 미뤄지긴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년에나 시작할 수 있을런지, 그만큼 시간이 늦춰진 것은 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라는 님의 배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욕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겨울 지나도록 변함없다면 내년 봄엔 어떻게든 흙벽돌을 찍어보려 한다. 마음껏 울 수 있는, 마음껏 내가 나를 비울 수 있는 영혼의 집이 한 채 설 수 있을런지.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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