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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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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70. 배추값 3만원
일찍 알았어도 별 뾰족한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준이네 배추 얘기를 들은 것은 너무 늦은 때였다. 제법 많은 배추를 심었는데 다 썩어 들어가도록 팔지를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다 저녁때 들린 준이 엄마가 김치거리 없으면 맘껏 뽑아가라고 아내에게 이르는 말을 듣다 얘기 끝에 나온 배추 사정을 듣게 되었다.
약 한번 주지 않은 그 아까운 배추가 그냥 밭에서 거반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주 시내에 있는 야채 가게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배추 시세가 없어 배추가 다 그 모양이라며 밭에서 포기당 백원 받으면 잘 받는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정말 배추가 춤을 추고 있었다. 작년만 해도 배추가 없어 포기에 몇천원씩을 하더니 올해는 단돈 백원으로 떨어지다니, 그런 요란한 춤이 어디 또 있을까.
궁리를 하다 시내에 계신 한 집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남은 배추가 얼마 안 되어도 그냥 밭에서 썩도록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혀를 차며 이야기를 들은 집사님은 다음 날 아침 일찍 트럭을 몰고 단강을 찾아왔다.
두 내외분이 환한 웃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자기 사업이 있는 바쁜 분들, 쉽지 않은 시간을 잘 알기에 고마움이 더욱 컸다. 교회 마당에 준이네가 캐다 놓은 배추를 트럭에 실었다. 차 한 잔 편히 나누지도 못하고 서둘러 두 사람은 떠났다. 배추 속꼬갱이처럼 환한 웃음을 남기고.
며칠 후 원주에 나간 김에 집사님 가게에 들렸다. 너무 어렵고 귀찮은 부탁을 드렸지 싶어 미안한 마음이었다.
얘길 들어보니 집사님 내외는 배추를 싣고나가 몇몇 아는 사람들에게 서너 포기씩을 팔았다. 트럭을 몰고 다니며 일일이 배달을 했던 것이다
“재밌고 좋드라고요. 한집은 아파트 7층에 살아 엘리베이터에 배추를 싣고 올라갔어요. 올라가며 ‘여보, 우리가 진짜 배추장수 였으면 어땠을까?’ 같이 웃으며 감사를 드렸어요.”
그러면서 집사님은 배추값으로 삼만원을 건네주셨다. 오십여 포기 가져 나갔으니 포기당 오륙백원을 받은 셈이었다.
밭 한때기에 배추를 심어 준이네가 건진건 모두 삼만원, 그것도 값을 후하게 친 것이 그랬다. 집사님 내외분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돈을 만들려 했을 것이고 그런 노력과 정성이 모인 것이 삼만원 이었다.
트럭 왔다 갔다 한 기름값에 두 분 수고한 걸 굳이 값으로 환산하면 어디 삼만원에 비기랴. 준이네 전하기 위해 배추값 가지고 들어오는 삼만원이 무겁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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