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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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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110. 비
사실 난 비를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척 좋아한다. 마음이 그만큼 어두운 탓인지 비오는 날의 분위기가 좋다.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해진다.
그 버릇 아직도 다 버리진 못했지만 비오는날엔 차 마시기를 좋아했고 비에 어울리는 음악 듣기를 좋아했다. 일부러라도 좋은 찻집을 찾아가 혼자 차를 마시며 비를 즐겼던 게 단강으로 떠나오기 전 도시에서 갖던 삶의 즐거움이었다.
비가 오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지금도 여전하긴 하지만, 이곳 단강에 살면서부터는 날씨가 주는 의미가 아주 달라져 버렸다.
그저 감정상의 문제일 뿐이던 도시 생활과는 달리 이곳 농촌에서의 날씨는 곧 삶하고 직결된다. 비가 한동안 오질 않아 가뭄이 계속되면 농작물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그걸 보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바짝 타게 마련이다. 그러면 괜히 죄스러워진다. 내 기도와 정성이 부족하여, 단지 그 하나만의 이유로 가뭄이 계속되는 것처럼, 괜히 마을 사람들 대하기가 송구스러워진다.
비가 많이 와도 그렇다. 한꺼번에 비가 쏟아져 논둑 밭둑이 터지고 애써 지은 농작물이 물에 잠겨 한순간 헛것이 되고 말 땐, 또다시 마음속엔 죄스러움이 들어찬다. 사람들 만나기가 민망스러워진다. 때맞춰 비가 알맞게 내려 괜히 마음이 당당해지는 날도 더러는 있지만.
장마가 진다. 그칠 줄 모르는 비가 내려 사방은 정말 비와 빗소리 뿐이다. 천둥과 번개가 어지럽고, 불어난 개울물 소리가 요란하다.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는 비. 예전 같으면 모든 생각 뒤로 정말 차나 음악을 즐기기에 좋은 날씨다. 여전히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비를 바라보지만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모두들 편안해야 할텐데, 논과 밭에 큰 피해가 없어야 할텐데, 생각이 자꾸 그리로 간다.
장마철에 농사를 걱정하는 일이야 해마다 때마다 반복되어온 일, 이력이 붙을 만도 한데 비는 때마다 무섭게 실감나게 온다.
올해 장마가 유달리 걱정되는 것은 사실 새댁 아줌마 때문이다. 끝정자 단강국민학교로 들어가는 곁길 옆 허름한 집에 새댁 아줌마 가 산다.
흙벽돌로 지은 단칸방 집인데 집 모양이 한눈에 보기에도 불안하고 위태하다. 집 전체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다. 누가 조금 기운 센 사람이 툭 밀기만 해도 힘없이 무너질 것 같은 모양이다.
몇 년을 그러고 버텨주는 것이 신기할 만큼 정말 집은 기울대로 기울었다. 그 집에서 새댁 아줌마가 장마를 나고 있다. 그러다, 그러다, 생각이 어두운 곳으로 미치면 아차 싶어진다.
얘기를 들으니 면에서 30만원의 돈이 나왔다 한다. 집 고치는데 쓰라고 나온 돈이란다 새댁은 이른바 ‘거택보호자’다. 안 나온 거 보다야 좋은 일이지만 30만원 가지고 ‘다 넘어간’ 집을 어떻게 일으켜 세운단 말인가. 딱한 사정 알고 있으면서도 마을 이장도 마을사람들도 어떻게 나설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당장 찾아온 장마. 그칠 줄 모르는 비가 걱정이다. 이번 비를 그 기운 집이 견뎌줄지, 그러면서도 무어라 뾰족한 대책들이 없는 것이다.
혼자 사는 궁핍한 삶.
대여섯평이면 족하지 싶은 그 집을 짓는데 얼마나 드는걸까. 맘먹고 나서 힘을 합하면 그게 못할일일까.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다 기운 집에서 홀로 살아가는 가장 어려운 이웃, 그에게 우리가 관심갖는 일은 당연한 일 아닌가.
오늘 그 얘기를 하려 우리는 모인다. 한 채 작은 사랑의 집을 꿈꾸며 가난한 우리들이 모인다. 우리가 이 땅에 세우려 하는 건 한칸, 새댁네 집만이 아니다. 아니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외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약하지 않기를. 차갑지 않기를 (얘기마을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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