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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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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032. 등화관제용 등잔
뭐 하나 전해드릴 게 있어 변관수 할아버지네를 들렸더니 고맙게 물건을 받으신 할아버지가 광으로 가 웬 것을 꺼내 오신다.
붉은 흙으로 구워 만든 화분 한쪽 옆을 깨뜨린 듯한 물건이었는데 뭔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이게 그래두 귀한 거예유. 일제때두 썼구 날리때두 쓴 거지유. 공습이 있으면 모두들 굴이나 방공호로 피했는데, 그때 썼든 거예유.”
그러면서 한쪽 면 깨진 쪽에서 뭔가를 꺼내는데 보니 작은 사기 등잔이었다. 알고보니 그건 공습시 반공호로 피할 때 썼던 등화관제용 등잔이었다. 옆으로 작은 등잔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을 뿐 다 막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말려 놓은 표주박 두 개와 함께 그 등화관제용 등잔을 내게 주셨다.
“난리 끝나고 집에 와보니 집이 다 불탔는데 한쪽 구석 이게 그래두 용케 남았드라구유. 그래 가지구 있었지유.”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그건 내가 받을 물건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이건 그냥 할아버지가 갖고 계세요. 할아버지에겐 굉장히 귀중한 거네요. 갖고 계시다가 나중에 돌아가실 때 되면 누구 자식한테 물려주세요. 그게 좋겠어요.”
“아니예유. 목사님 드리구 싶어 드리는 거예유. 암말 말구 받으시구 옛날엔 이런 일두 있었다구 젊은 사람들에게 얘기나 잘해 주세유”
등화관제용 등잔은 지금 내 서재 책장 위에 놓여져 있다. 등잔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의 정과 부탁을 생각한다. 어둔 역사 속 어렵게 남은 한 유물, 공포와 불안 속 희미하게 타올랐던 심지. 작은 등잔이 간직하고 있는 쉽지 않은 내력을 두고두고 꺼지지 않는 심지로 지켜야 할텐데.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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