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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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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어때? 재미있잖나?
서울 지하철에서 겪은 일입니다. 대낮이었는데도 좌석은 거의 찼고 여기 저기 서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침 나는 가까운데 자리가 하나 나서 앉을 수 있었지요.
어느 역에선가 남자 어른이 하나 타더니 무슨 까닭인지 자기 얼굴을 마구 구기는 것이었습니다. 맞아요. '구긴다'는 표현이 잘 들어맞는군요. 마치 먹고 남은 깡통을 발로 밟아 구기듯이, 그렇게 자기 얼굴을 구겨대는 것이었어요.
한동안 그러고 서 있던 그가 맞은 편 의자에 틈이 조금 있어 보이는 승객 사이로 자신의 큼지막한 엉덩이를 들이밀었습니다. 양쪽의 두 승객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곱게 차려 입은 중년 여인이었는데, 무슨 끔찍한 물건이 옆에 오기라도 한 듯 황급히 자리를 비켜 주었지요. 그래서, 아무튼 그 사람은 편한 자세로 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년 여인의 얼굴이 조금씩 구겨지기 시작했어요. 방금 그 무례한 침입자가 눈을 질끈 감고는 역시 아까처럼 얼굴 근육을 있는 대로 총동원하여 함부로 구겨대면서 옆에 앉아있는 여인 쪽으로 치근거렸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싫어하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듯 '얼굴 구기는 남자'는 계속 여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역시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솜씨로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구겨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예술이라고 할 만했어요. 사람 얼굴 근육이 그 정도로 탄력 있게 움직이며 자리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 남자는 얼핏보아 낮술에 얼근히 취해있는 것이 틀림없었어요.
이윽고 참다 못한 여인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더니 하얀 눈으로 남자를 째려보고 나서 저쪽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얼굴 구기는 남자는 여전히 두 눈을 질끈 감고서 계속 얼굴을 구겨대는 겁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났나 봅니다. 그 사이에 여인이 비워둔 자리에는 다른 용감한 청년이 앉았지요. 그런데요. 내가 그에게서 눈길을 막 거두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그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어요. 물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그가 그의 몸에서 나에게 던지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때? 재미 있잖나?"
"........?"
나는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그의 말뜻을 미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을 계속 했어요. 여전히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내 얼굴좀 보라구. 재미 있잖나? 그렇지만 친구야, 이 얼굴에 속지 말게나. 나는 말씀이야, 이보다 훨씬 더 흉칙한 얼굴을 만들 수도 있어. 살인마의 얼굴도 만들 수 있다구..... 지금 나를 무슨 똥자루나 되는 듯이 피해서 달아난 저 새침한 계집의 얼굴도 말씀이야, 저것도 다 내가 만든 작품이라, 이런 말일세. 물론, 아까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자네의 그 점잖빼는 얼굴도 내 솜씨지. 아시겠능가? 흥.....흥, 속지 말라구. 속지 말어, 이 친구야. 가면은 어디까지나 가면일 뿐이야......"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그가 한마디 더하더군요.
"자네와 나와 저 여자와 그리고 이 전철 안에 있는 모든 군상과 삼라만상 모든 존재가 저마다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네. 하긴 몰라도 별 탈이야 없겠지만......"
문득 무위당 선생님이 연전에 써주신 '만물일화'(萬物一華)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만물이 한 송이 꽃이라는 문자일 터인데 내 나름으로 "모든 것이 하나의 여러 꽃이다"로 풀어서 읽었더랬지요. 시방 저 '얼굴 구기는' 취객이 그 얘기를 나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한 마디 물었습니다.
"도대체 자네는 왜 그렇게 온갖 가면을 쓰고 끝도 없는 모노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순간, 그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떠서는 붉게 충혈 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상한 전류가 내 몸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꾸하는 나를 슬쩍 들여다보았던 것입니다.
"그려...... 재미 있구먼!" ⓒ이현주 (목사)
서울 지하철에서 겪은 일입니다. 대낮이었는데도 좌석은 거의 찼고 여기 저기 서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침 나는 가까운데 자리가 하나 나서 앉을 수 있었지요.
어느 역에선가 남자 어른이 하나 타더니 무슨 까닭인지 자기 얼굴을 마구 구기는 것이었습니다. 맞아요. '구긴다'는 표현이 잘 들어맞는군요. 마치 먹고 남은 깡통을 발로 밟아 구기듯이, 그렇게 자기 얼굴을 구겨대는 것이었어요.
한동안 그러고 서 있던 그가 맞은 편 의자에 틈이 조금 있어 보이는 승객 사이로 자신의 큼지막한 엉덩이를 들이밀었습니다. 양쪽의 두 승객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곱게 차려 입은 중년 여인이었는데, 무슨 끔찍한 물건이 옆에 오기라도 한 듯 황급히 자리를 비켜 주었지요. 그래서, 아무튼 그 사람은 편한 자세로 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년 여인의 얼굴이 조금씩 구겨지기 시작했어요. 방금 그 무례한 침입자가 눈을 질끈 감고는 역시 아까처럼 얼굴 근육을 있는 대로 총동원하여 함부로 구겨대면서 옆에 앉아있는 여인 쪽으로 치근거렸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싫어하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듯 '얼굴 구기는 남자'는 계속 여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역시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솜씨로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구겨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예술이라고 할 만했어요. 사람 얼굴 근육이 그 정도로 탄력 있게 움직이며 자리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 남자는 얼핏보아 낮술에 얼근히 취해있는 것이 틀림없었어요.
이윽고 참다 못한 여인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더니 하얀 눈으로 남자를 째려보고 나서 저쪽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얼굴 구기는 남자는 여전히 두 눈을 질끈 감고서 계속 얼굴을 구겨대는 겁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났나 봅니다. 그 사이에 여인이 비워둔 자리에는 다른 용감한 청년이 앉았지요. 그런데요. 내가 그에게서 눈길을 막 거두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그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어요. 물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그가 그의 몸에서 나에게 던지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때? 재미 있잖나?"
"........?"
나는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그의 말뜻을 미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을 계속 했어요. 여전히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내 얼굴좀 보라구. 재미 있잖나? 그렇지만 친구야, 이 얼굴에 속지 말게나. 나는 말씀이야, 이보다 훨씬 더 흉칙한 얼굴을 만들 수도 있어. 살인마의 얼굴도 만들 수 있다구..... 지금 나를 무슨 똥자루나 되는 듯이 피해서 달아난 저 새침한 계집의 얼굴도 말씀이야, 저것도 다 내가 만든 작품이라, 이런 말일세. 물론, 아까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자네의 그 점잖빼는 얼굴도 내 솜씨지. 아시겠능가? 흥.....흥, 속지 말라구. 속지 말어, 이 친구야. 가면은 어디까지나 가면일 뿐이야......"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그가 한마디 더하더군요.
"자네와 나와 저 여자와 그리고 이 전철 안에 있는 모든 군상과 삼라만상 모든 존재가 저마다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네. 하긴 몰라도 별 탈이야 없겠지만......"
문득 무위당 선생님이 연전에 써주신 '만물일화'(萬物一華)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만물이 한 송이 꽃이라는 문자일 터인데 내 나름으로 "모든 것이 하나의 여러 꽃이다"로 풀어서 읽었더랬지요. 시방 저 '얼굴 구기는' 취객이 그 얘기를 나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한 마디 물었습니다.
"도대체 자네는 왜 그렇게 온갖 가면을 쓰고 끝도 없는 모노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순간, 그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떠서는 붉게 충혈 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상한 전류가 내 몸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꾸하는 나를 슬쩍 들여다보았던 것입니다.
"그려...... 재미 있구먼!"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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