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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 고마운 친구들에게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71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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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21. 고마운 친구들에게 

 

지금쯤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밀린 잡은 충분히 잤는지요. 학기말 시험을 마치자마자 농촌봉사활동을 들어왔으니 이래저래 밀린 잠이 많았겠지요. 쌓인 긴장이 풀려긴 몸살을 앓지나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맑고 건강한 그대들의 웃음이 얼핏 떠오르는 이런저런 걱정들을 이내 넉넉히 지우지만요. 

해마다 어김이 없는 그대들의 방문은 올해도 어김이 없었지요. 한학기 공부를 마친 친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어떤인 여행을 떠나고, 어떤인 아르바이트를, 어떤인 다시 공부에 파묻힐 때 그대들은 갈아입을 옷 한 꾸러미 꾸려 단강을 찾았지요. 

누가 크게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수고했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닌 일, 오하려 주머니를 털어 달랑 남은 돈을 회비로 내고 오는 그대들의 어처구니 없도록 흔쾌한 모습은 언제 보아도 정겹고 소중하기 그지없습니다. 

올해도 때는 장마철, 요란한 비 잔치가 그대들을 맞았지요. 내리는 비를 종일 맞으며 담배 젖순을 따고, 고추 말뚝을 박고, 고추 끈을 묶고, 피 뽑고, 김을 매고, 날씨가 더운 가슴을 막으랴는 듯 그대들의 땀방울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새벽 5시 기상, 구보, 아침식사, 그리고 아침 일곱시 일 나가기,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와 찬물에 몸을 씻고 밤늦도록 평가회. 그대들의 하루는 말 그대로 강행군이었지만 그대들은 언제라도 웃음 잃지 않았고, 웃음은 언제나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노인들의 불편한 몸을 자상하게 돌봐준 의료분과의 모습도 늘 마음을 찡하게 했지요. 

 

미안함과 고마움 속에서 그대들의 도움을 청하는 손길은 계속 이어져 그만큼 그대들은 분주했었고 한 주일이 너무 빨리, 쉽게 갔다고 하면 그대들이 서운해 할지 몰라도 올핸 유난히 한 주일이 빨리 갔습니다. 

둘째날 밤, 마을 젊은이들이 아련한 막걸리 파티와 마지막 날 동네 조기 축구회와 가졌던 축구 시합등이 새로운 활력이 되어 지루한 날짜 세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도 컸겠지만, 참 한 주가 아쉽도록 빨리 지나갔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 그대들은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차려 동네 사람들을 청했지요. 

‘누가 누구를 대접해야 할텐데 끝까지 신세를 지니 어떡하면 좋아!’ 동네 할아버지의 혼잣말은 사실 동네 사람 모두의 마음이었지요. 

“수고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사이사이 마주 앉아 음식을 들며 피어난 얘기 꽃들, 참 정겨운 모습이었습니다. 함께 땀 흘리고 마주한 서로의 모습은 아무 격의 없이 고마울 뿐이었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가 이어졌고 박수로만 따라하기에 너무도 흥에 겨워 덩실덩실 벌어진 춤판, 아, 정말 그날 밤은 시간이 시간을 잊은 듯했습니다. 

‘저 무른 초원 위에, 쪼루 쪼루 쪼루 쪼루, 그림같은 집을 짓고, 쪼루 쪼루 쪼루 쪼루’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던 새댁 아주머니 (안정순 할머니)의 노래와 춤을 다시 볼 수 있었던 일은 가슴 뭉클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동네 살아도 여간해선 그가 말하는 것 듣기 힘든 은주 아버지의 끝없는 노래와 춤,여간해선 쉽게 어울리지 않는 털보 아저씨 (정종화 씨)의 흥겨운 어깨춤, 노총각의 아쉬움과 아픔을 훌훌 다 털어 낸 채 동생같은 젊은이들과 어울렸던 재철씨와 영택씨의 진한 어우러짐. ‘청춘을 돌려다오!’ 목청껏 노래하며 당신 우엉밭 매준 고마운 학생들과 끝까지 어울렸던 진짜 청춘 김진택씨, 누가 학생인지 누가 주민인지 구별할 수 없도록 학생들과 한덩어리로 어울린 규성이 아빠와 학래아빠, 마을 이장인 준이 아빠.

손에 손잡고 마음을 다 열고 노래하고 춤추는 그대들의 모습을 내내 바라보며, 그래요, 마음으론 내내 비가 내렸답니다. 

아, 정말 그 밤은 시간이 시간에서 내려 마음껏 그대들을, 정과 정으로 녹아 그대들과 어우러진 이 마을을 마음껏 축원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마운 친구들, 나는 내 마음을 다 담아 그대들을 ‘고마운 친구들’이라 부릅니다. 세상에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음을 몸으로 보여준 고마운 친구들, 그대들의 선한 웃음이 지금껏 선합니다. 

가을에 다시 한번 보게 되겠지만 그보단 겨울에 편하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눈 속에 파묻혀 몇며칠 지내며 다시 한번 시간을 잊도록 하지요. 짚신 삼는 법도 배우고 멍석 짜는 법도 배우고 그러다 눈 내리면 산토끼도 몰고, 그러다 밤이 되면 아랫목은 더욱 따뜻하겠지요. 

고마운 그대들로 외롭지 않아 고맙습니다. 97년 여름 농촌봉사황동을 마치고 한 희철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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