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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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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93.대보름 풍습
지난 정월 대보름 때 이야기니 한참 전 이야기가 되겠다. 마침 단강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의 모임이 있어 다 함께 모였다가, 모인 흥에 윷판이 벌어졌고 윷놀이 뒤에 같이 음식을 나누게 되었는데, 같이 있던 솔뫼마을 박한선 이장이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나야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다음날 있을 동네 행사를 위해 줄을 다리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줄을 다리다니? 귀가 번쩍 뜨였다.
물어보니 참으로 뜻밖에도 솔뫼의 개소마을에선 아직도 정월대보름 행사를 갖고 있다는 얘기였다. 솔뫼에서 강을 끼고 한참을 외지게 들어가는 개소마을, 눈여겨 보지 않으면 거기마을이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모르고 지나칠 마을이 있는데, 그 작은 마을 개소에서 해마다 민속놀이 행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육민관고등학교 송진규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고, 송선생님이 또 주변에 연락하여 막상 행사가 열릴 때에는 원주KBS 방송팀과 도민일보 기자, 원주신문 기자등 제법 많은 외지인들이 한 외진마을에서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민속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소중한 기회라 여겨져 집식구들과 함께 개소로 넘어갔다. 막 보름달이 뜨려 하는 순간, 마을 이장인 박한선씨는 마을 초입에 선 느티나무에 술을 올렸다. 우물자리에서 한번, 강가쪽 느티나무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성껏 술을 따라 바쳤다.
어느샌지 동네 아이들은 망우리통을 돌리며 쥐불놀이를 시작했다. 휙 휙 어느새 들판엔 붉은 불덩이들이 막 동산위로 떠오른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둥그렇게 번져가기 시작했다.
사오십 가구가 넘던 마을이 줄고 줄어 이젠 네 집 밖에 안 남았고, 네 집 뿐이라면 동네라 부르기에도 적적한 모습인데, 그래도 대대로 내려오는 보름행사를 이적지 거르는 법 없이 이어오고 있었다.
사물놀이패의 지신밟기가 시작되어 마을엔 금새 생기가 돌았다. 풍물의 위력이라니, 밋밋함을 금방 생기로 뒤바꿔놓는 신비한 힘이라니. 안 하긴 그렇고 하자니 사람이 없어 그냥 흉내만 내고 넘어가려 했다는데, 그래도 외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오고 방송팀이 찾아오자 급하게 사물놀이가 준비된 것이었다.
지신밟기가 끝난 뒤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미리 짚으로 꽈 놓은 암수 용이 서로 얽혀 있는 줄을 양쪽에서 잡고 줄을 다리는 놀이였다. 잡아당기는 줄이 본 줄에서 몇 갈래로 갈라져 있어 ‘게줄’이라 불리는 줄을 서로 잡고 두 패로 나뉘어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한 쪽편은 남자 어른들이, 다른 한쪽편은 아이들과 여자 어른들이 줄을 잡았다. 서로 밀고 밀리며 줄을 잡아 당기지만 그렇다고 운동회날처럼 서로 이기자고 힘껏 힘을 쓰는 것이 아니다.
밀고 당기는 것은 놀이를 위해서 일 뿐 승부는 미리 정해져 있다. 아이들 편이 이겨야 그해 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내력을 따라 첫판은 아이들 편이 둘째 판은 어른 편이, 마지막 셋째판은 아이들이 이긴다.
그래도 밀고 당기는 줄에는 제법들 힘이 실리고, 승패를 떠난 줄 다리기엔 승패가 걸린 줄다리기 못지않은 흥이 넘친다.
줄 가운데 올라탄 청년은 팽팽한 줄 위에서 더욱 홍을 돋구고 “와! 와-!” 하는 함성 소리가 줄다리기 내내 이어진다.
줄에 올라탄 청년은 제일 먼저 장가를 가게 된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누가 올라 탈 건가 그 결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지만, 이젠 그 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군 제대를 하고 잠시 고향에 머물고 있는 청년, 그나마 그가 없었다면 누가 올라탈 수나 있었을지.
줄다리기가 끝난 뒤 짚으로 꼰 용은 강으로 나가고 강에 두고 오면 용은 강물을 따라 어디론지 흘러가게 되고, 그러면 마을은 한 해 동안도 어려운 일없이 태평한 삶을 살게 되는.... 그것이 언제인지 모를 옛날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네 집 밖에 안 남도록 끊기지 않고 내려온 전통행사였던 것이다.
행사가 끝나고 차려낸 음식을 나누며 정담들을 나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끼리 마음을 모아 한해를 경건하게 맞이하는 이 소중한 예식이 이젠 얼마나 더 이어질 있는건지.
추위를 쫓기 위해 지핀 장작을 헤집자 타닥타닥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밝고 맑은 불티들, 어쩌면 이런 소중한 유산들도 저 허공에서 이내 사라지는 불티처럼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 아닌가 싶은 허망한 안타까움.
내년엔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마을 사람들은 뒤늦게 다짐을 하고 나서지만.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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