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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 폐농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427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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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53. 폐농


“이젠 농사두 못 지어 먹겠어유.”
작질로 올라가는 길 모퉁이, 섬뜰에서 올라오는 한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아저씨라 하지만 실은 올해 일흔되신 할아버지 입니다. 논물을 보고 오는 길인지 삽 한자루를 들고 있었습니다. 벼 언제 심느냐 여쭙자 아저씨는 대답보다 장탄식을 먼저 했습니다.
“전화 걸어 모 심으러 오라니까 하나같이 바빠서들 못 온다는 거예유. 그러은서 하는 말이 하나같이 이젠 농사 그만 두라구들 하니 내원 참.”
아저씨는 혀를 찼습니다. 갈수록 일손은 모자르고 해가 다르게 기력은 달리고, 벅찬 일철 자식들은 하나같이 바빠 못 들어오고, 가을철 가져가는 한 두가마 쌀은 거져 나는 쌀인가, 지들 벌어 지들 먹고 살기 바쁜 처지에 농사 그만 지라 말로만 그러니, 말은 안 해도 아저씨의 속맘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안사람이 아파유. 걷지도 잘 못하는데다 얼굴이 퉁퉁 분걸유, 농살 질려든 안사람 뒷바침이 커야 하는데...”
아저씨의 어둡고 쓸쓸한 표정 위로 얼핏 폐농의 그림자가 겹칩니다.
폐농. 폐농, 폐농. 절박하고 무서운 단절이 어느샌지 코앞이었습니다.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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