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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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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13. 개구리 요란하게 우는 밤에
소리에게
내내 마음에 있었던 생각을 오늘에야 네게 꺼내 놓는다. 이만큼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이 한편 마음을 편하게 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4학년, 어리면 어리지만 그래도 마음의 얘기를 나눌 만큼 네가 자랐다고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가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만 지난해 가을, 교회에서 음악회를 연 일이 있었지. 단강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회였지만 학교에 강당이 따로 없어 예배당에서 음악회를 열었지.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성악등 단강에선 접할 수 없었던 좋은 음악을 눈앞에서 보고 듣는 시간이었지.
음악을 듣는 너희들의 눈망울이 얼마나 초롱초롱 빛나던지, 밤하늘의 별들이 너희들의 눈을 통해 음악을 듣는구나 싶을 정도로 맑게 빛났었지.
순서 중에 있었던 피아노 연주를 기억하니? 원주 시내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연주한 피아노를 말이다. 쇼팽곡을 연주했는 데 눈을 감고 들으니 어린이가 친다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기가 그지없었지. 슬며시 눈을 뜨고 너희들 표정을 바라보던 아 빠는 문득 네 모습을 보는 순간 열어붙듯 아찔했단다.
눈이 따라 갈 수 없을 만큼 연주하는 두손이 건반 위를 달라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너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책을 보기 시작했지. 잠깐의 모습이었지만 아빠는 왠지 아찔했단다. 너의 그런 모습이 쉽지 않았단다.
그날 밤 아빠는 모임이 있어 하루를 나가서 자게 되었단다. 늦은 밤 전화가 와서 받으니 엄마였단다. 밖에 나간 내게 엄마가 전화하는 일은 드문 일이어서 무슨 일이 있나, 걱정스런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단다.
엄마의 얘기는 뜻밖이었지. 그 늦은 시간에 무슨 이유인지 네가 대성통곡을 하며 울고 있다는 얘기였단다.
특별한 이유없이 울어대는 너를 보다 못한 엄마가 내게 전화를 했던 것이란다. 결국 너는 아빠 전화도 받지 않았지. 전화를 끊고는 한동안 마음이 흔들렸단다. 아프기도 했고 허전하기도 했고 괜히 미안하기도 했단다. 너무 어린 나이에 큰 아픔을 겪게 했다는 미안함이 컸단다.
낮에 있었던 음악회,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그 울음을 참지 못한 것은, 아빠 생각으론 그것밖엔 더 떠오르는 게 없었단다. 고개를 떨구던 네 모습이 선명하게 되살아왔단다. 문화적인 충격이 네게 그토록 큰 것이었겠지. 같은 연배이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마주한 그 ‘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었겠지.
‘쟤는 누구고 나는 누구인가?’ 그 까마득한 거리감에 너는 울고 또 것이겠지.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초여름으로 접어드니 계절도 몇 번 바뀌었구나. 그동안 네 마음은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
소리야.
오늘 아빠가 네게 하고 싶은 얘기는 아파하고 울 때 아빠 또한 마음 아팠다는 얘기와, 또 하나는 누군가의 훌륭한 모습을 볼때 가꺼이 박수를 쳐줄수 있는 아이로 네가 자랐으면 좋겠다는 얘기란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잘 할 수는 없지. 너는 너대로 네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들이 있잖니. 다른 사람의 훌륭한 점을 인정하고 축하해 주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지만 그런 태도는 훌륭한 태도란다.
그렇게 서로의 훌륭한 점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축하해 줄 수 있을 때 우리 사는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거란다.
소리야, 아빠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속에서 맑은 마음으로 자라는 네 모습을 정말로 사랑한단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한단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사랑하고 인정하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렴.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네 답장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니 네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하나의 답장이었음 좋겠구나.
개구리 요란하게 우는 밤에, 아빠가.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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