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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 메뚜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92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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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191.메뚜기

 

지난가을은 정말 밤이 많았다. 그야말로 밤 풍년이었다. 나무마다 버겁도록 밤이 열렸고, 쩍쩍 알밤으로 밤송이가 벌어진 게 멀리서도 허옇게 드러났다. 

무더위 때문이었는지 밤벌레도 드물어 반짝반짝 윤이 나는 깨끗 알밤들을 너무나도 원 없이 줏을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외지인들도 차를 타고 들어와 밤을 줍느라고 한동 마을이 다 북적거렸다. 

마음먹기 따라서는 한사람이 하루 서너 말 줍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도 몇 번 산에 올라가 밤을 주웠다. 

흔하게 널려 있는 밤들, 그러나 밤 한 통을 줏어들 때마다 가슴속엔 자연이 주는 은총에 대한 고마움이 들어찼다. 무거워지는 건 밤을 담는 자루보단 마음이 먼저였다. 

 

밤을 줏는 재미와 함께 누릴 수 있었던 즐거움은 메뚜기를 잡는 일이었다. 윗작실에서 담안으로 넘어가는, 지금은 좁다란 농로 하나가 남아 있는 생골로 들어갔을 때, 실개천 동편으로 자리 잡은 논들이 다 묵고 있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층층이 논들이 자리한 제법 넓다란 골짜기 하나가 모두 묵고 있었다. 

지난해만 해도 농활 나온 대학생들이 함께 땀 흘렸던 곳이었는데 한 해를 두고 묵는 논들이 되고 말았다. 

논둑길을 지날 때 퍼드득 퍼드득 풀 사이를 뛰는 것들, 메뚜기 떼였다. 용케도 묵는 논을 찾아 수많은 메뚜기 떼들이 살고 있었다. 

어릴적 기억을 그리움으로 떠올리며 메뚜기를 잡기도 했다. 메뚜기를 잡아 온 저녁, 나서서 메뚜기 요리를 했다. 

후라이팬에 메뚜기를 넣고 적당히 저어 노르스름하게 익히고, 날개를 떼어낸 후에 참기름과 소금을 넣고 다시 볶고,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어릴적 그 냄새가 모처럼 다시 피어올랐다. 

그래도 사내라고 규민이는 머뭇머뭇 메뚜기를 먹었지만 끝내 소리는 입에 대지 않았다. 메뚜기를 먹으면 달리기를 잘한다는 꼬임에 떨어진 메뚜기 다리를 징그러운 표정으로 먹어보았을 뿐이었다. 

그처럼 드문 먹거리, 맛을 그렇게 끊기고 싶지 않아 몇 번 더 권했지만 “왜 아빠 어릴적 먹었다고 내가 먹어야 하냐?”며 딸은 그럴듯이 항변했다. 세대차요, 세대와 세대와의 간격인지도 몰랐다. 

지독한 가뭄과 무더위로 겨우 이룬 평년작을 큰 고마움으로 여겼던 게 지난가을 농사였다. 

하나 산은 풍요로운 선물을 우리에게 허락하였다. 계속되는 추위 속에 조용히 침묵하는 겨울 산이지만 얼마 전 가을 산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었었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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