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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 소같은 사람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412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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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31.소같은 사람

 

1
영진을 다녀오게 되었다. 동해 영진에서 목회하고 있는 정균형이 한번 같이 예배를 드리자고 불렀다. 임원헌신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꼭 찾고 싶었던 곳, 보고 싶었던 형을 그렇게 찾게 되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해송을 사이로 가까이서 들려오는 곳, 영진교회는 바다와 잘 어울려 아담하게 세워져 있었다.
저녁예배를 드리고 마주앉아 이야기 나눌 때도, 다음날 아침 이웃마을 사천에서 목회하고 있는 진하형을 만나 같이 이야기 나눌 때도 난 내내 형의 우직함과 묵묵함에 압도를 당하고 말았다. 언젠가 기석형은 정균형을 두고 ‘소같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정균형을 두고선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 흔들림과 주저함으로 남아있는 막연함을 형은 흔쾌히 털어낸 채였고, 홀가분하면서도 무게있는 삶을 묵묵히 살아낼 뿐이었다.

 

2
안식년 얘기가 나왔다. 좋은 자리로 부르는 청을 마다하고 형은 첫 목회지인 영진에서 안식년을 맞고 있었다. 걷던 길로부터 잠시 벗어나 머리를 식히며 걷는 길의 소중함을 새롭게 새기는 안식년, 두어달 쉴 계획이라는 형의 대답에서 그동안 무얼 할거냐 다시 묻자 형의 대답이 전혀 뜻밖이었다.
오징어배를 탈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영진 사람들이 대부분 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어부들이다. 형은 두어 달 시간을 내 그들과 함께 고기를 잡아보고 싶다 했다. 안식년을 맞아 어떻게 ‘쉴까’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형의 말은 충격이었다. 위험한 바다로 나가려는 형의 계획은 아름답고 거룩하게 여겨졌다.
오징어배를 두어 달 타면 돈도 꽤 모을 수 있을 거라고 형은 너털웃음으로 자신의 치열함을 감추고 나섰지만, 돌아오는 먼 길, 난 형의 소같은 걸음에 내내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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