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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병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6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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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517.병


지 집사님이 몸살을 되게 앓았다. 찾아 갔을 땐 정말 눈이 십리나 들어가 있었다. 워낙 마른 분이 꼼짝없이 앓아 누우니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몸을 무너뜨리는 오한도 심했지만 허리통증으로 집사님은 꼼짝을 못했다. 경운기에 겨우 실려 보건소에 몇 번 다녀왔을 뿐이었다.
다음날 다시 찾았을 땐 빈 집인 줄 알았다. 한참을 불러도 기척이 없어 병원에라도 다니러 갔나 돌아서려는데 방안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문을 여니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방, 집사님은 두꺼운 이불 속에 혼자 누워 있었다. 전날에 비해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병원이 있는 원주까진 백리길, 마을 보건소에라도 다시 다녀와야 되지 않느냐 하자 집사님의 한숨이 길다. 그나마 막내 종근이가 있어 전날 만 해도 경운기 타고 보건소에 다녀왔는데 그새 종근이가 서울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아픈 엄마를 집안에 내려놓고선 도시로 떠난 막내아들. 하기사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냥저냥 집안일을 돕는 막내를 볼 때마다 좋은 일자리 구해야지 바라기도 했고, 일자리 안 알아본 것 아니면서도 막상 그렇게 막내마저 떠나자 아픈 몸에 허전함까지 겹쳐 집사님은 자신을 추스릴 힘을 맥없이 놓쳐버리고 있었다.
누구보다 착해 엄마 말 언제 한번 거역함 없던 막내가 무엇 그리 급하다고 아픈 엄마를 두고, 아파 꼼짝을 못 하는 엄마를 두고 먼 길을 떠났을까. 국에 갈 때 까지 만이라도 집에서 집안 일 거들면 한 달에 용돈 삼아 20만 원씩 막내에게 붙이겠다고 형들이 그랬다는데 그런 형들의 제한조차 미덥지 못했던 것일까.
며칠 고생끝 집사님은 일어났다. 널려있는 일감을 두고서는 앓아 누을 겨를이 없어 채 회복 되지 못한 몸을 스스로 일으켰다.
몸은 일어섰지만 훌쩍 떠난 후론 아직 한번 연락도 없는 막내. 집사님의 병은 마음으로 마음으로 더욱 깊게 도지고 있었다.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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